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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민주당이 ‘1유로 경선’실패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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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주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캠프는 바빴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손학규·김두관 캠프는 특히 ‘화력’을 첫 경선지인 제주에 집중했다. “A의원이 제주에서 1만 명을 모았다” “응집력이 좋은 생활체육회를 공략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문재인 캠프도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는 “다른 캠프는 이름과 주민번호만 받았지만 우리는 공인인증서 번호까지 받아 선거인단 명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모바일을 이용한 국민참여경선제는 이렇게 열렬한 동원경쟁 속에 준비되고 있었다. 그 덕에 민주당은 ‘당 밖의 국민’을 ‘당 안의 선거(대선 경선)’에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애초에 국민경선제도가 가진 의미는 퇴색하고 있었다.

 프랑스 사회당은 지난해 11월 288만 명의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을 실시했다. 유권자(약 4450만 명)의 6.4%가 제1야당의 후보를 뽑는 데 참여한 셈이다. 당시 일반 국민이 경선에 참여하기 위해선 1유로(당시 환율로 약 1540원) 이상의 후원금을 오히려 사회당에 내고, ‘자유·평등·박애·정교분리·정의·연대·진보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서약서에 서명까지 해야 했다. ‘돈과 가치’라는 소중한 비용을 스스로 지불한 선거인단의 응집력은 강했다. 이로 인해 사회당은 17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엔 이런 참여자의 자발성이 보이지 않았다.

 당초 민주당의 모바일 투표는 ‘정당정치는 고여 있고, 그로 인해 썩어버렸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했다. “정치인들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로 모든 것을 결정했고 일반 국민은 소외됐다. 가치를 공유하는 일반 시민이 당원과 똑같은 권리로 당내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권위적인 정당은 해체되고, 돈선거·조직선거는 사라질 것이다”는 기대가 이 제도에 녹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기대와 달리 민주당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엔 점점 편의성이 중시되고 있다. 1월 당 대표 경선에선 모바일 투표를 두고 ‘30초 투표’라는 말까지 나왔다. 휴대전화로 30초면 간단히 선거인단에 등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곤 광주 동구에서 모바일 선거인단을 동원하려던 운동원이 투신해 사망하는 극단적인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래도 근본적인 반성은 없었고, ‘덩어리 선거인단’이 또다시 양산됐다. 민주당의 한 현역 의원이 모았다는 ‘1만 명’, 공략 대상이 됐다는 ‘생활체육회’, 주민번호와 공인인증서 번호까지 달려 있는 수많은 선거인 리스트는 어떤 자발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가치를 서로 공유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