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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보증 20년’으로 GE·지멘스 붙들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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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부산 녹산공단에 위치한 태웅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허용도 회장은 “직접 쇳물을 끓이는 사업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한국 경제의 허리, 중견기업이 어렵다. 최근 정부가 육성 정책을 내놨지만 중견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중견기업이 강해야 한국 경제가 튼튼해진다”지만 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변변한 법령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며 알찬 중견기업을 일궈온 이들이 있다. 중앙일보가 이들의 얘기를 ‘중견기업 파워리더’ 코너에서 소개한다.

부산에 본사가 있는 ㈜태웅은 풍력발전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인 회전축(메인샤프트)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풍력발전설비 세계 2위인 GE의 풍력발전기 회전축 50%를 태웅이 공급한다. 대형 철판을 해머 등으로 두들겨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자유단조품 생산에서도 국내 1위를 달린다.

 태웅을 이끄는 허용도(64) 회장은 원래 교사였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진주교대를 졸업한 허 회장이 처음 교사로 발령받은 곳은 경남 통영의 섬마을 욕지도였다. 교사에서 사업가로의 변신은 갑작스레 이뤄졌다. 집안 어른의 요청으로 교편을 접고 단조 업계에 뛰어들었다. 7년간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집안 어른이 빚보증을 잘못 서 1981년 회사가 문을 닫게 됐다. 회사를 인수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에 집 전세금을 일부 뺀 돈을 합쳐 자본금 1300만원을 들였다.

 처음 3년은 어려웠다. 그런 태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건 일본 수입 단조품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다. 단조 링의 경우 80년대 초만 해도 일본에서 전량 수입했다. 국산화를 위해서는 고가의 설비가 필수였다. 미쓰비시사 최신 설비 값이 당시 16억원이었다. 대출을 위해 발이 닳도록 은행을 돌았지만 여의치 않다가 교사 경력을 믿은 한 은행직원의 도움으로 대출을 받았다.

 설비 수입 이후 수개월간 씨름한 끝에 결국 생산에 성공했다. 최신 설비를 도입하고 품질관리를 철저히 했더니 기존의 일본 제품보다 질도 좋았다. 수요가 늘었고 급기야 일본에서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태웅 제품을 수입하는 상황이 됐다.

 회사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자 허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또 발휘됐다. 2001년 녹산공단으로 이전하면서 회사의 운명을 바꾼 베팅을 했다. 시장도 없던 상태에서 먼저 지름 9.5m짜리 풍력발전기 등에 쓰이는 세계 최대 단조 링을 만들 결심을 했다. 풍력발전 시설이 대형화되는 추세를 내다보고서다. 독일에 설비를 발주하니 “한국 업체가 200억원짜리 설비를 살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다. 직접 한국까지 불러 공장을 보여주고서야 기계를 사올 수 있었다.

 세계 최대 단조 링 제조에 성공하자 태웅의 시장은 더 이상 한국이 아니었다. GE와 지멘스가 2003년부터 주요 고객이 됐다. 납품할 때 보통 1년인 품질보증 기간을 태웅은 20년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GE와 지멘스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었다. 품질보증을 20년간 한다고 하자 수주업체 관계자가 “20년간 회장이 살아있겠소”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허 회장은 “내가 없어도 회사는 건재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세계1위 풍력발전 설비회사 덴마크 베스타스사와도 2006년 1억 달러 규모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태웅은 2001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조선업 활황과 친환경사업의 부상에 힘입어 이후 승승장구했다. 2007년엔 주당 13만3900원을 기록, 허 회장이 1조원이 넘는 주식부자 대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와 이어진 조선업 불황 등으로 최근 몇 년 새 주가는 내리막이었다. 하지만 허 회장은 전혀 풀이 죽지 않았다. 오히려 “일각에선 장내 매수 등을 통해 주가를 올리라지만 절대 안 할 것”이라며 “회사가 잘되면 주가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했다. 매출도 회복세다. 2008년 6152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매출액은 2010년 3336억원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4806억원까지 올라왔고, 올 상반기에만 2500억원을 넘어섰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중견기업의 어려움에 대해 “매출 1500억원 정도인 중견기업이 대기업 규제 다 받다 망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허 회장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현재 부산 화전산단 내에 제강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 같은 대장장이들은 직접 쇳물을 끓여내는 게 평생 소원”이라며 “내가 직접 끓인 쇳물이 나오는 그날이 바로 태웅이 완성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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