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다 프로' 공식깬 그에게 끌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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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선균

프로정신은 섹시하다.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드는 자세 말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프로가 될 것을 강요하는 이 세상은 좀 부담스럽다. 프로가 되지 못하거나, 되기 싫은 사람들은 그저 ‘루저’로 분류될 뿐이다.

 프로정신을 미화하는 소위 ‘전문직 드라마’가 부담스러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의사·검사를 비롯한 전문직들은 인간적인 프로와 비인간적인 프로로 나뉠 뿐 언제나 ‘프로’였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골든 타임’ 속 민우(이선균)가 내심 반가웠다. 의대를 나와 멀쩡히 의사가 됐으면서도 전문의가 될 생각은 없는 한량. ‘난 치열한 게 정말 싫다’는 표정. 한방병원에서 여유롭게 일하며 삶을 즐기는 게 그의 목표였다. “엄마가 의대 갈래, 법대 갈래라고 물어봐서 그냥” 의대에 간 것뿐인 그를 보며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비장함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가득한 드라마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피곤했다.

 그런데 민우 쌤(선생님)이 ‘실망스럽게도’ 응급실 인턴에 도전한다. 친구의 응급실 당직을 대신 서던 날,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내지 못한 데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실망스럽게도’ 진짜 의사가 되어간다. 그런데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의 프로정신,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기의 마음을 따랐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른다’는 식상한 성장기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현실적인 민우의 캐릭터 때문이다. 그는 존경하는 최인혁 교수(이성민)에게 “눈썰미도 있어 보이고 결단력도 있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그걸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고, 조금만 일이 잘못되면 “대체 난 왜 이렇게 병신 같을까”라며 주저앉아 운다.

 그러다 가끔 호기를 부리면 그게 꽤, 멋있다. 가령 이런 대사.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당장 수술 안 하면 애 죽어!”

 이런 민우를 이선균(37)이 연기한다. 카리스마 넘치던 셰프(드라마 ‘파스타’) 말이다. 매력적인 목소리 톤, 안정된 연기력을 가진 그에게 의외의 선택 같지만 사실 그는 올해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영화 ‘화차’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이어 이번 드라마에서도 어딘가 모자란 듯한 남자로 분한다. 평가는 긍정적이다. 왜, 정장만 입던 남자가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의외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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