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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배려하라...마음이 넉넉해야 진짜 신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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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호 18면

내가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눠라...BMW 코리아 김효준 대표
“저는 넉넉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꿈을 꾼다는 건 그때의 내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맞닥뜨린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기회가 왔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BMW 코리아 김효준(55) 대표는 거대한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매일의 성공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사건은 늘 생길 수밖에 없고, 그걸 관리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우리 임원들이 중요한 사안을 두고 의견 대립을 하면 너무 즐겁습니다. 그걸 조정하기 위해 제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얼마나 좋아요. 문제를 해결하면서 내 자신의 가치와 경험이 한층 더 심화되는데.”

월간 ‘젠틀맨 코리아’ 창간 공동기획  4인4색 ‘젠틀맨의 조건’

성공한 남자로 꼽히는 그에게 젠틀맨의 덕목을 물었다. 그는 “젠틀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배려·절제·봉사·진정성 같은 단어들이 연상된다”며 “말하자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회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젠틀맨”이라고 말했다.이 같은 생각은 그의 기업경영 방침과도 연결된다. BMW 코리아는 얼마 전 미래재단이라는 비영리 법인을 설립했다. 나눔과 상생을 기치로 내걸었다. 수익 창출이 지상과제인 기업이 비영리 법인을 설립한 이유는 뭘까.
“좋은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건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기업의 가장 큰 숙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만이 아닌 우리 이후의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함께 고민해야겠죠. 미래재단의 설립은 그런 고민의 결과입니다.”

그는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명예가 될 것이다. 브랜드가 곧 자존심이다”라고 말했었다. 이 말을 그는 이렇게 풀어 들려주었다.
“건실했던 기업이 갑자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뭐가 부족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존경심이었어요. 대중의 존경을 받을 수 없는 기업의 활동은 제한될 수밖에 없죠. 기업 활동에 영적인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면 성장은 제한된다는 걸 역사에서 배웠어요. 존경받지 못하는 기업은 비전이 없습니다.”

사업이든 사교든 룰을 지켜라...앤디앤뎁 김석원 디자이너
앤디앤뎁(ANDY&DEBB)의 대표인 김석원 디자이너는 “내가 참 철이 안 드는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새로운 것에 금방 빠져서 미친 듯이 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면서.
요즘 그 대상은 서핑이다. 한 달 전부터 시작했단다. 토요일마다 강원도 양양으로 달려가는데 운전에만 3시간이 걸리는 ‘원정’이다. 그래도 “기계의 도움 없이 자연과 호흡하는 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져 운전하는 시간이 아까운 줄 모른다.여전히 도전에서 기쁨을 느끼는 ‘젊음’이지만, 그도 역시 40대. 점차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나이다. 그런 그가 최근 나이듦을 새삼 떠올리게 된 건 올림픽을 보면서였다.
“호케쓰 히로시라는 일본인 승마 선수가 생각납니다. 일흔이 넘은 최고령 참가자인데 말도 나이가 많았죠. 말과 함께 늙어가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 멋있더라고요.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 승마 선수가 자신의 말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드러냈듯, 김석원은 옷도 어떤 사람의 삶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남성의 경우 20대엔 절대로 패션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잘 입는 옷이란 건 어울리는 옷이거든요. 그러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40~60대에 입는 옷이야말로 그 사람의 인생을 보여줄 수 있죠.”승마 선수가 오랜 시간 끝에 최고의 파트너십을 완성한 것처럼, 김석원 역시 오랜 시간 여러 스타일을 섭렵한 끝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았다.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 마음에 들면 해어질 때까지 입는 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생각하는 젠틀맨은 “룰을 지키는 사람”이다. 반칙이 너무 많은 시대, 사업이건 사교건 룰을 잘 지키는 사람이 점점 좋아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요즘 남성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고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를 매우 고무적으로 본다. “한국인은 순발력이 있기 때문에 이른 시간 내에 멋진 중년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한다. “가끔 실패도 하겠지만 그런 과정을 겪어야 자기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집니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남자들은 그만큼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남자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 갖춰라...부천필하모닉 임헌정 지휘자
5년 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에겐 휴대전화가 없었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임헌정(59)은 당연하다는듯 말했다.“생활이 심플합니다. 연습장과 집, 강의를 나가는 학교가 전부 거든요. 휴대전화를 들고 다닐 이유가 없죠.”부천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은 지 23년, “바람 부는 대로,본분을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됐다”는 그는 욕심이 들어간 소리를 경계한다. 수십 년 지휘를 하다 보니 이젠 소리만 들어도 사람을 볼 수 있는데, ‘나를 좀 봐 줘, 내 소리를 들어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욕심이 들어간 소리가 있다는 것.

대신 그는 늘 단원들에게 “마음으로 연주하라”고 말한다. 마음이 담겨 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진리. 기술적으로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은 많지만, 마음을 담아 연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는 아쉬움에 늘 채근하게 된다는 것이다.욕심도 발전의 밑천이 될 것 같고, 마음으로 연주하라는 건 어째 도덕교과서 같은데…. 대신 그가 꺼낸 키워드는 동경이었다. 무언가 먼 것에 대한 동경 말이다.“바그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남는 건 동경일 거라고. 무언가를 동경하고 결국 그 동경의 대상에 다다르는 것,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휴대전화도 없이, 바람 부는 대로 살 뿐이라는 그에게 예술 좀한다는 예술가가 넘쳐나는 시대는 어쩌면 벅찰지도 모르겠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중심을 지킬 뿐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명예가 없어도, 어느 한구석에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족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신사는 그래서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은, 중용을가진 남자”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를 도와라...KAIST 사회 공헌 디자인연구소 배상민 교수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배상민(40) 교수는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파슨스 교수로, 뉴욕에서 잘나가던 디자이너였다. 그랬던 그가 돌연 귀국했다. “아름다운 쓰레기만 계속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물건을 만들고 그걸 사게 하는 일, 그리고 6개월 후에 그보다 더 좋은 걸 만들어서 예전 걸 버리고 다시 사게 만드는 일이 내 직업이었습니다. 그걸 잘할수록 사람들은 훌륭한 디자이너라고 칭찬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죠.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는 디자인이 진정 좋은 디자인입니다. KAIST에서라면 내가 꿈꾸던 디자인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AIST에서 그가 처음 만든 랩 이름은 ‘ID+IM’. ‘나는 디자인한다, 고로 존재한다(I Design, therefore I Am)’의 약자다. 여기서 D라는 글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Dream, Design, Donation이다. 열정적으로 꿈꾸고, 그것을 디자인하고, 결과물을 사회와 나눈다는 것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만든 것을 사람들과 나눈다는 점에서는 요리와도 닮았죠. 단순히 자본주의의 쳇바퀴 속에서 사람들의 지갑을 열고 기업의 배를 불리는 첨병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가 만든 이 ‘사회공헌디자인연구소’에서는 지금 ‘시드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아프리카 주민들과 함께 그들이 살 집을 그들 보기에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다. 우리가 느끼는 각지고 모던한 디자인이 아닌, 아프리카의 자연과 문화와 미감까지 살리는 집을 짓는 일이다.
이런 그에게 신사란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고 슈트를 잘 입는 남자가 아니다. 바로 ‘긍휼의 마음’을 가진 남자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돕는 남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한국 최초의 디자이너이자 신사라고 생각합니다. 『목민심서』를 보면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그의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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