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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SNS에 팔아버린 영혼…‘나’는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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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 1만6000원

“나무여, 너는 땅속으로 가서/푸른 식물로 다시 태어나거라/나도 땅속으로 가서/시인으로 다시 태어날지/영원히 말 안 하는 바위가 될지/한 천년쯤 생각해 보리라.” 영웅적 고독의 이미지를 노래한 여성시인 문정희의 시 ‘부탁’ 전문(全文)인데, 어쩌면 그렇게 이 신간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질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전성기인 요즘 우리들은 영웅적 고독을 꿈꾸기는커녕 온종일 재잘대며 산다. 트위터(Twitter)는 새들이 지저귀는 걸 뜻하지 않던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 늘 누군가와 연결, 접속돼 있으나 실제론 외로울 틈조차 없다. 이렇게 둥둥 떠다니는 동안 우리가 놓쳐버린 가치, 잊었던 그 무엇은 없을까?

 이 책은 디지털 물결 속에서 떠밀려 다니는 우리 삶을 위로해 주는 정갈한 마음의 편지 44통을 담았다.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로 이제는 유럽 학계의 현자(賢者) 분위기를 풍기는데, 국내 소개된 것은 『모두스 비벤디(생활양식)』

『액체 근대』 등이 있다. 이번 책은 특히 쉽다. 이탈리아 여성주간지에 연재됐던 에세이 모음이기 때문이다.

 신간은 디지털 풍경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인스턴트 섹스, 프라이버시, 유행, 소비 지상주의, 건강 불평등 등을 다루지만, 언제나 책의 주제인 고독으로 돌아간다. 흥미로운 게 예전 일본 소니가 ‘워크맨’을 출시할 때 자랑스레 내세웠던 헤드카피이다.

 “당신은 결코 다시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없는 디지털 소음의 등장 예고편으로 더 이상 심볼릭할 수 없다. 워크맨이 MP3로, 테이프가 디지털 파일로 변하고, 다시 스마트폰에 스며든 지금 이 책의 간결한 표지 자체가 울림을 전해준다. 어눌한 손글씨로 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란 제목….

[일러스트=강일구]

 사실 고독이란 말은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언어(眞言) 즉 만트라의 의미도 완전히 잊고 산다. 가족과 있어도, 회식할 때도 스마트폰을 끼고 살며 상대방을 건성으로 본다. 왜 그럴까? 디지털 시대 우리가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징후라는 게 신간의 지적이다.

 트위터 팔로워를 늘려가는 동안 “영원히 말 안 하는 바위” 같은 듬직한 고독의 힘과 위용을 까먹은 것이다. 17년 전 1000만 명도 채 안 됐던 인터넷 인구는 2011년 지구촌 20억인데(윌리엄 데이비도우의 『과잉연결시대』), 요즘 까닭 모를 불안이 은근히 우리 뒷덜미를 죄어온다. 괜한 엄살이 아니다.

 저자는 한 달에 무려 3000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미국의 한 10대 소녀의 사례에 주목한다. 잠잘 때 빼고 10분에 한 통꼴이다. “이는 소녀가 혼자 지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과 꿈, 걱정, 희망을 고민하며, 홀로 있어본 적이 없었다.” 자발적 단순한 삶(voluntary simple life)을 실천하고, 혼자 명상하는 Q 타임(퀄리티 타임)을 가지려는 트렌드에 비춰볼 때 그녀는 병적인 디지털 중독자이다.

 미 소녀 네 명 중 셋이 여가시간 대부분을 소셜미디어로 보내는데, 우리나라가 심하면 더 심하리라. 그게 바로 ‘프라이버시의 증발 현상’인데, 계몽주의 이후 형성되어온 근대적 자아가 녹아내리는 셈이다. 국가권력이나 사회가 그걸 강요하는 게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하면서 자기 자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를 자발적으로 대중에 노출하고 중계한다.

 바우만은 “프라이버시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유일하고,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주권 지대”라고 선언한다. 그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프라이버시와 개성, 자율성, 자기정립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걸 외면한 우리는 지금 외로움과 고독을 도매금으로 팔아넘긴 상태이다. 대가는 만만치 않다. 결정적으로 남의 가슴에 스며드는 진정한 소통이 어렵다.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책, 옮긴이가 인용한 가수 안치환의 ‘소금인형’ 노랫말이 가슴을 찌른다. “당신의 깊이를 알기 위해/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우린 그걸 두려워한다. 견고한 내가 없으니 너에게 뛰어들어갈 에너지도, 용기도 없다. 설사 있어도 내 삶이 녹아버릴까 봐 두려운 것일까?

조우석 문화평론가

디지털 시대 ‘빛과 그림자’ … 더 읽어볼 책들

2000년대 초반은 디지털 문명사 개막의 제1막 1절에 불과하다. 이 물결을 다룬 선구적인 고전은 앨빈 토틀러의 『제3의 물결』이지만, 지식·문화 그리고 인간 삶의 변화를 짚어보는 다른 단행본은 비관론이 주류를 이룬다. “아침에 읽은 트위터 한 줄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다”고 지적하는 『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요하임 모르 등 지음) 등이 대표적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도 교양 붕괴, 학력 저하를 디지털 탓으로 돌린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도 인터넷 과잉 연결의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윌리엄 데이비도우의 『과잉연결시대』)도 있어 섬뜩하다. 단 낙관론도 없지 않은데, 도널드 서순의 『유럽문화사』(전5권)의 경우가 그렇다. 그 책은 “19세기 초 귀족보다 2000년 점원이 문화적으로 풍요롭다”고 단언한다.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짚은 마셜 맥루한의 고전 『미디어의 이해』가 낙관주의로 가득 찬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신간 중에서는 『또래 압력이 세상을 어떻게 치유하는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전 MTV 세대가 나홀로주의자에 머물렀다면, 유튜브 세대는 또 달라졌다. 외려 사회적으로 착한 가치를 남들과 공유하는 변화를 보이는 점을 디지털 시대의 긍정적 특징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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