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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일본 우방이지만 위안부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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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유철 광복회장, 이 대통령, 김윤옥 여사, 강창희 국회의장. [최승식 기자]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엔 어느 때보다 국내외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독도 방문과 일왕의 사과 촉구에 이어 이날 대일(對日) 비판 수위에 따라 한·일 관계가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 관련해선 위안부 문제에 비중을 뒀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한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문제가 한국과 일본만의 특수 사안이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임을 부각시켰다. 또 정제된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전날의 일왕 사과 촉구 발언에 비해 차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축사에 대해선 일본 측도 별다른 반발을 보이지 않았다.

 ◆“과거사에 얽힌 사슬”=경축사 원고 전문(全文) 7600여 자(字) 중 일본에 관한 대목은 370자였다. 최근 대일 강경 행보에 비춰 많은 양은 아니다. 독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미 행동으로 보여준 만큼 경축사에 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선 처음으로 ‘군대 위안부’를 직접 거론했다. 이를 ‘전시(戰時) 여성 인권문제’로 규정함으로써, 이미 흘러간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보편적 인권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2월 18일 한·일 정상회담, 3·1절 기념사에선 “위안부 문제는 법 이전에 국민 정서, 감정의 문제”라며 인도적 차원의 해결을 촉구했었다. 또 올 3·1절 기념사에서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인도적 문제”란 취지의 발언을 했었다. 최 수석은 “이번 경축사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성격을 규정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사에 얽힌 사슬이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고도 했다. 동시에 ‘체제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과 같은 우호적 표현도 썼다.

 ◆“대북정책 효과 내기 시작”=남북관계에 대해선 기존 대북정책의 원칙 재확인과 북한의 변화에 대한 주시를 골자로 했다. 북한이 비핵화 등을 통해 진정성 있는 변화를 보여줄 경우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고, 인도적 지원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일각에서 기대하던 남북관계와 관련된 ‘깜짝 제안’은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임기 말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감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신 이 대통령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양상과 다르게 그간의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이 실질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며 “이제 북한도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변화 조짐이 현 정부의 대북 압박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북한의 변화에) 진전이 있다면 우리가 적극 환영하고 지원해 나갈 것임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평화통일이 광복의 완성’이란 메시지와 함께 “이웃 국가들과 국제사회 전체에도 큰 축복이 될 것”이란 말도 했다. 중국에서 “불안정한 북한보다 통일 한국과 접경을 이루는 게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걸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경제·민생엔 임기 없다”=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경제’와 ‘위기’를 각각 18번, 13번 언급했다. 그만큼 상황을 어렵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수출이 주춤하고 내수 경기가 활력을 잃고 있어 걱정”이라며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또 “정치엔 임기가 있지만 경제와 민생엔 임기가 없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고 또 일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경제 주체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특히 여야를 향해 “기업이 생산하고 투자하고 고용할 의욕을 높여주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매년 제시해온 ‘광복절 키워드’는 올해엔 뺐다. 예년엔 ‘저탄소 녹색성장’(2008년), ‘친서민 중도실용’(2009년), ‘공정한 사회’(2010년), ‘공생발전’(2011년)을 제시했었다. 다만 “후발주자의 대열에서 벗어나 선도주자의 자리로 나섰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코리안 루트(route)’를 개척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한 달 전부터 준비=경축사는 이 대통령이 한 달 전부터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 중 마지막 경축사인 만큼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분야별 비서관들과 10여 차례 독회(讀會)를 하며 원고를 다듬었는데, 많은 부분을 이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특히 “정치엔 임기가 있지만 경제와 민생엔 임기가 없다”는 부분은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부분이라고 한 참모는 전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28분간 경축사를 낭독하는 도중 28차례의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엔 38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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