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 절반, 일제 2차대전 중 학살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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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돼 노역에 시달렸던 한인 관련 각종 기록물이 14일 공개됐다. 왼쪽부터 작업 전 교육을 받고 있는 광부들, 한인들이 강제 노동을 했던 탄광, 사할린에서 희생된 고 엄수갑씨의 묘. [사진 국가기록원]
사할린 한인 학살 가능성을 적은 보고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사할린 거주 한인을 대량 학살했을 가능성을 적은 옛 소련(현 러시아) 정부의 1940년대 보고서가 처음 공개됐다. 또 일제 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된 한인 1만2000명의 명단과 가족관계 관련 기록도 확보돼 사할린 강제동원 관련 보상 신청에도 보탬이 될 전망이다. 이는 지금까지 공개됐던 사할린 한인 강제동원 명부의 서너 배 규모다.

 국가기록원은 14일 러시아·일본 등에서 확보한 해방 전후 사할린의 한인 관련 희귀 기록물을 공개했다. 사할린 한인에 대한 소련 정부 공문서, 강제노역에 동원한 한인들의 작업 모습을 담은 사진, 사할린 한인 명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러시아 사할린의 국립문서보존서에서 입수한 1945년의 소련 정부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사할린 서북부의 에스토루 지역에 한인이 1만229명 살았다. 하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지 않았다. 소련 정부는 보고서에서 한인 감소 이유로 피난, 귀환과 함께 일본에 의한 학살 가능성을 지목했다.

 건국대 한혜인 교수는 “해당 보고서 초안은 소련 정부가 사할린을 점령한 후 기록한 것”이라며 “전시 중 군 자료이고 적군 관련 정보이기 때문에 과장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인구 감소 원인으로 일본군의 학살 가능성을 적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 김갑섭 기록관리부장도 “사할린 지역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일본군의 학살이 있었다는 증언을 많이 해 왔는데 그동안에는 근거가 부족했다”며 “외국 정부 보고서에 관련 사실이 적시됐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또 1급 비밀문서로 분류됐던 1949년 소련 문서에는 소련 정부가 1945년 8월 이후 쿠릴 지역 한인들을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일괄 통제하고 있었던 내용이 들어 있다. 소련 내에서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보도지침’(1952년)도 함께 공개됐다. 이들 기록물은 19일까지 ‘동토에서 찾은 통한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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