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세 무상보육 예산 지난달 바닥 난 서초구 “카드사에 외상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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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당초 책정한 보육 예산을 다 써버린 서울 서초구가 외상으로 돈을 끌어다 쓰기로 했다. 이달 초 지자체의 무상보육 예산 일부를 정부에서 책임지기로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현장의 혼란을 해결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과 학부모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서초구 이제근 보육지원팀장은 “25일까지 정부가 보육예산을 추가로 지원하지 않을 경우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측에 우리 구 대신 카드사에 보육료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13일 말했다. 정보개발원은 보건복지부의 위임을 받아 보육료 바우처(이용권) 관리를 맡고 있는 기관이다. 지자체가 매달 24일까지 개발원에 보육료 분담금을 맡겨야만 돈이 카드사에 지급된다. 보육료는 해당 학부모들에게 지급된 신용카드인 ‘아이사랑카드’로 결제하며 개발원 측이 지자체로부터 분담금을 받아 일괄적으로 카드사에 대금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서초구가 “보육료로 낼 돈이 없으니 대신 지급해 달라”고 요청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외상 지급 요청이다.

서초구는 지난해 12월 20일 올해 보육예산으로 85억원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 돈은 지난달 10일 이미 다 소진됐다. 서초구의 지원 대상 아동이 1662명에서 올해 5113명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7월치 부족분은 서울시에서 임시로 빌려줬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에서 0~2세 무상보육을 전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야기됐다. 지자체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국회가 무상정책을 밀어붙인 데 따른 혼란인 것이다. 광역지자체는 물론 기초지자체까지 모두 “돈이 없어서 더 이상 무상보육을 하지 못하겠다”고 연이어 선언하고 나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달 초 중앙정부가 나서 지방정부의 무상보육 예산(6639억원)의 43%(2851억원)를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채권을 발행하면 원금·이자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다.

당시 정부는 부족분의 57%를 지자체가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서초구는 지방채권을 발행하지 않았다. 또 보육료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이나 예비비를 편성하지 않았다. 이제근 팀장은 “예산분담비율(63%)을 낮춰주지 않으면 구 의회가 추경이나 예비비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초구의 경우 중앙정부가 보육료의 10%, 서울시 27%, 서초구가 63%를 분담한다. 서울의 다른 구(21~40%)보다 분담비율이 높다. 서초구 관계자는 “다음 달 보육 예산도 없는 상태여서 정부에서 추가 대책이 없으면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서울의 나머지 24개 구도 9월 이후 보육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여서 줄줄이 서초구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김한걸 사무처장은 “불경기 탓에 지방세수가 줄고 있어 보육예산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올해만은 중앙정부가 전액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좀 더 노력해야 한다”며 “더 이상 추가 지원은 안 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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