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한여름 밤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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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꿈같은 날들이 지나갔다. 가슴이 뿌듯하고 감사하다. 우리는 모처럼 하나가 됐다. 이렇게 기쁘면서도 올림픽 중계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왜 우리는 올림픽 때만 하나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갈라설 것이다. 진보와 보수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젊은이와 노인으로, 여와 야로 대립해 싸울 것이 확실하다. 몇 달 남지 않은 대선은 우리의 갈라섬을 더욱 깊게 만들 것이다. 잠시의 하나됨은 한여름 밤의 꿈이었는가. 왜 올림픽 때만, 월드컵 때만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눈이 밖으로 향해 있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됐다. 연평도에, 독도에, 그리고 런던에 우리 눈이 향해 있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됐다. 북한의 위협에 노출되고, 일본의 억지에 분통이 터지고, 상대국 선수와 대결할 때 우리는 같은 팀에 소속된 일원임을 깨닫게 된다. 상대 집단의 위협에서 내 집단을 보호·유지하지 못하면 그 안에 있는 개체는 집단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이는 인류가 오랜 역사 경험에서 깨달은 집단본능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개체 간에 개별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동물이기도 하다. 각 개체는 집단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경쟁과 갈등, 그리고 분열이 일어난다. 우리 눈이 안으로만 향해 있으면 그래서 살벌해지는 것이다. 이 개인의 본능은 집단본능보다 더 본원적인 본능이다. 이 두 가지 본능의 조화 여부에 따라 한 나라의 흥망이 결정되는 것이다.

 런던에 태극기가 올라갈 때, 우리 선수가 싸워 이길 때 우리는 감동한다. 그때는 선수와 나, 응원하는 우리 모두가 한몸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런던 올림픽이 귀중했던 이유는 우리 선수들이 예상외로 많은 메달을 땄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우리의 눈을 밖으로 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것이다. 나는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태극기를 외면하고 애국가를 부르지 않던 사람들, 국민의례 대신 노동의례를 하던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소위 종북파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금메달을 따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장면을 보고는 있을까? 이런 순간에도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런 사람들은 이 나라에 암적인 존재다. 집단을 무너뜨리려 공격하는 외부의 적과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경쟁을 하더라도 나라는 허물지 말아야 한다. 나라가 허물어지면 개인은 존재하지 못한다. 진보를 하든, 보수를 하든 대한민국의 울타리 안에서 해야 한다.

애국심은 집단본능에서 나온다. 올림픽을 응원하면 애국심이 생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때뿐이라는 것이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우리는 각기 제 갈 길로 간다. 다시 개별이익에 몰두한다. 이 애국심이 마음속에 늘 자리잡게 할 수는 없을까? 집단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모두 개별이익을 확대할 때 누군가 이를 던져버리고 집단을 위해 희생하면 그 집단은 살아남는다. 안중근의 희생 때문에 대한인의 자존심과 명예가 지켜질 수 있었다. 우리 선수들의 빛나는 승리 뒤에는 개개인의 크고 작은 희생이 있었다. 올림픽 때의 응원이 항구적인 애국심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것은 응원에는 대부분 즐거움만 있을 뿐 이러한 자기희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대한민국’을 외칠 때, 저 선수들처럼 이 나라를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 보았는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아름다운 수고와 희생을 높이 사 주고 기려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마음속에도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애국심이 자리잡는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살던 친일파는 계속 잘살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못사는 나라라면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려 할 것인가.

그러나 이런 집단본능을 이용코자 하는 정치세력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파시즘,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과거 일본의 침략적 민족주의가 그런 것들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 중에도 개인의 인기를 위해, 정권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집단본능을 이용했던 일이 많았다. 애국을 가장 많이 외치는 부류는 정치인들이다. 선거철이 오면 후보자들은 누구나 애국을 말하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 자기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나라의 분열까지도 이용하려는 사람은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지 않았거나 희생할 의사가 없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애국심이 없는 것이다. 헌신 없이 나라 사랑은 없다. 애국은 자기희생이 따라야만 완성되게 되어 있다. 이번 올림픽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