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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바닥 친 미국 주택시장 … 한국도 따라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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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뉴저지주 마운트 올리브 타운십의 주택 신축 현장. 매각이 완료됐다는 ‘SOLD’ 안내판이 보인다. 올 2분기 중 미국의 주택가격은 6% 오르고 신규주택 건축 허가도 크게 늘었다. [블룸버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에녹 신(48)씨는 요즘 집값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2006년 주택 버블 때 100만 달러를 호가하던 그의 집값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직격탄을 맞아 지난해 70만 달러 아래로 밀렸다. 하지만 올 들어 인근의 주택거래가 활발해지더니 호가가 80만 달러 선으로 올랐다.

 신씨는 최근 보유 주택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갱신하면서 깜짝 놀랐다. 15년 만기 고정금리가 3% 선으로 떨어져 있었다. 신씨는 이 같은 금리로 모기지를 바꾼 뒤 집을 한 채 더 사기로 마음먹었다. 주택을 구입해 세를 줄 경우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올려 남는 장사가 된다는 계산이 나와서다. 신씨는 요즘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 시의 주택을 주목하고 있다. 시장 조사 결과 주택 구입 가격과 비교한 렌트 수입이 4% 선에 달하기 때문이다. 모기지 이자를 내고 1% 정도 남는다. 만약 주택 가격이 올라가면 꿩 먹고 알 먹기다. 신씨는 “모기지 금리보다 렌트 수익이 커졌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주택시장이 바닥을 친 게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주택시장의 회복 조짐은 구체적인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시장정보업체인 코어로직은 8일 미국의 2분기 주택 가격이 1분기보다 6%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분기 기준으로 2005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코어로직에 따르면 미국 100대 도시 중 71개 도시의 주택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올랐다. 국책 모기지업체인 프레디맥도 2분기 주택 가격이 전 분기보다 4.8% 올랐다고 밝혔다. 프레디맥은 주택 가격 상승에 힘입어 2분기에 30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4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공적자금을 수혈 받은 뒤 최대 실적이다.

 또 다른 주택지표인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미국의 집값은 올 2월 바닥을 찍은 뒤 6월까지 4개월째 상승했다. <그래프 참조> 미국의 20개 주요 도시의 집값을 평균해 산출되는 이 지수는 2000년 초 100에서 출발해 주택 버블이 정점이었던 2006년 상반기에 206에 달했다. 6년 새 106% 올랐던 셈이다. 하지만 2006년 하반기 이후 하락세로 기울어 올 2월 136까지 떨어졌다. 6년 새 34% 떨어진 것이다. 전국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인기 없는 도시의 집값은 반 토막 난 곳이 속출했다.

 하지만 이제 바닥을 탈출하는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짝 장세라는 견해도 있다. 2009년 여름 이후 1년간 미세한 반등을 보인 뒤 다시 주저앉았던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신중론이다. 그러나 당시와는 다른 것 같다는 낙관론이 갈수록 득세하는 상황이다. 미 언론과 부동산업계 등의 각종 설문을 보면 요즘 경제 전문가의 80~90%가 “주택시장이 바닥을 찍었다”는 쪽에 답하고 있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얼마 전 “앞으로 주택시장에 큰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버핏은 지난 7월 주택금융회사인 레지덴셜캐피털의 모기지 자산을 인수하는 등 주택시장이 오르는 쪽에 거액을 걸었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그동안 주택시장을 짓눌러온 위험 요인들이 해소됐다”며 “미국 집값이 향후 3~7년간 수퍼 상승 사이클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미국 주택시장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 주택시장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낙관론의 근거를 자세히 살펴보자.

 무엇보다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공감대다. 시장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는 인식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06년 고점 대비 평균 35%나 떨어졌다. 9년 전인 2003년 수준이다. 그동안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체감 가격은 반 토막 수준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급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악성 매물인 그림자주택(대출을 갚지 못해 은행이 압류한 집) 재고가 급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네바다·텍사스주를 중심으로 올 들어 20% 가까이 줄었다. 그림자주택이 팔리는 데 걸리는 기간은 10개월을 넘던 것이 정상 수준인 6개월로 단축됐다. 기존 주택의 재고가 줄다 보니 신규 주택의 건축 허가 건수가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의 올 상반기 건축 허가 건수는 30% 이상 증가했다.

 둘째, 모기지 금리의 하락이다. 지난주 미국의 30년 만기 모기지 고정금리는 3.49%까지 떨어졌다. 15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2.8%를 기록했다. 모두 미국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미국 중산층이 주로 쓰는 20만 달러 모기지를 30년 만기로 빌리면 원리금 상환액이 월 904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같은 규모 주택의 렌트비(1000달러 선)보다 싼 금액이다. 5년 전(모기지 금리 6.5%)에는 원리금을 월 1264달러 갚아야 했다.

 시중 금리가 다시 올라도 걱정할 게 없다.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2014년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해 놓은 상태다.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금리가 낮게 유지되는 상황을 미국의 주택 구입자들은 즐기고 있는 셈이다.

 셋째, 빠른 채무 재조정이다. 미국에선 모기지를 받은 사람이 빚 감당이 안 되면 담보 주택을 은행에 넘기는 것으로 끝이다. 한국처럼 다른 재산이나 월급에까지 압류가 들어오는 일이 없다. 개인 신용에도 별 타격이 없다. 돈을 잘못 꿔준 은행도 응분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빚 갚을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겐 은행들이 채무를 조정해 원리금 부담을 완화시켜 준다. 그렇다 보니 시장 상황이 가격에 빠르게 반영되고, 구조조정도 원활하게 이뤄졌다.

 넷째, 외국인들의 미국 주택 매입 붐이다. 미 부동산중개업협회(NAR)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1년 동안 외국인은 총 824억 달러 규모의 미국 주택을 사들였다. 이는 1년 전(664억 달러)과 비교해 24% 늘어난 규모다.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은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뉴욕 등으로 주로 캐나다와 중국·러시아·브라질·멕시코 등 신흥국의 부호들이 비즈니스 체류나 자녀 교육 등을 위해 세컨드 하우스로 미국에 집을 사고 있다.

 역시 크게 떨어진 가격이 외국인들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외국인들은 더구나 현찰을 들고 오기 때문에 주택을 시세보다 5~10% 더 싸게 흥정한다. 모이 바이시 NAR 협회장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외국인들의 주택 구매 문의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며 “외국인들이 주택시장의 급매물을 많이 거둬간 게 최근 시장의 수급을 호전시킨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섯째, 향후 미국 경제 및 일자리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다. 미국 경제가 크게 개선되진 않더라도 앞으로 완만하게나마 일자리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신뢰가 쌓여나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지난달 미국의 취업자 수는 16만3000명이 늘어 시장의 예상치(10만 명)를 크게 상회했다. 실업률이 8.3%로 여전히 높지만, 그만큼 일자리 호전에 대한 기대로 시장에 나오는 구직자가 많기 때문이란 긍정적 해석이 나온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비어있는 일자리(고용주와 구직자 간 미스 매치)는 6월 말 현재 376만 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 연말 대선을 거쳐 내년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경기부양책을 본격 시행하고 그만큼 일자리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주택시장의 호전은 그 자체로도 일자리와 민간 소비를 늘리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2008년 이후 미국의 건설부문에선 사라진 일자리만 230만 개다. 주택시장이 미 국내총생산(GDP)에서 점하는 비중은 평균 5% 선이었지만, 현재 2.3%로 떨어져 있는 상태다. 과거 수준으로 점차 돌아가면 그만큼 GDP와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미국 주택시장이 회복되더라도 그 속도는 매우 더딜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미국 은행들이 모기지를 과거보다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지로 집을 사고 싶어도 높은 은행 문턱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한국 주택시장의 가격 조정은 아직 미진하다. 호가를 높게 띄워놓고 거래가 안 된다고들 하니, 바닥을 찍었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은행들은 또 어떤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요지부동이다. 채무 재조정에도 소극적이다. 미국처럼 외국인 주택 매입이 왕성하지도 않다. 한국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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