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리치 이탈 비상 … 금융계, 세법개정에 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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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 시장을 위축시킬 폭탄이다.”(한국거래소 파생상품본부 관계자)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한 대 맞고, 소득공제율 축소로 또 한 대 맞았다.”(대형 신용카드사 관계자)

 8일 정부가 발표한 ‘2012년 세법 개정안’에 금융업계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이 축소된 신용카드사, 비과세 혜택을 내세워 즉시연금으로 재미를 보던 생명보험사의 타격이 클 전망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이번 개정안을 ‘택스마겟돈(taxmageddon: 미국에서 ‘세금 재앙’이란 뜻으로 쓰는 조어)’에 빗대기도 했다.

 생명보험업계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표 효자 상품인 즉시연금의 비과세 혜택이 내년부터 대폭 제한되기 때문이다. 생명보험 주요 6개사는 올 5월까지 즉시연금으로 지난해 실적(1조2895억여원)에 가까운 보험료(1조1130억여원)를 거둬들였다. 돌풍의 비결은 비과세였다. 10년간 계약을 유지하면 차익에 대한 세금이 면제돼 “부자들의 세금 회피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많았다.

 내년부턴 종신형 상품이나 10년 안에 보험료를 중도 인출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즉시연금도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이정걸 국민은행 WM사업부 팀장은 “주식·부동산 시장이 불안해 수익성보다는 절세를 원하는 수퍼리치들이 늘고 있어 즉시연금이 인기를 끌었다”며 “세테크 수단이 없어지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유력한 세테크 수단이 없어지게 되자 업계는 벌써 대체상품 찾기에 나서고 있다. 임조연 삼성증권 반포서래지점 부장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인 만큼 절세상품에 대한 니즈는 지속될 것”이라며 “즉시연금 대신 10년을 거치하는 장기저축성보험이나 물가채·브라질채 등에 부유층의 투자가 몰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용카드 업계도 울상이다. 내년부터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은 20%에서 15%로 줄고, 현금영수증은 20%에서 30%로 오른다. 체크카드는 30%의 소득공제율을 유지한다. 박성업 여신금융협회 부장은 “신용카드는 업계의 주요 매출원이자 수익원인데 소득공제율을 축소하면 수익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에 이어 또 한번의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생상품 시장도 걱정이다. 2016년부터 도입되는 거래세 때문이다. 선물은 약정금액의 0.001%, 옵션은 거래금액의 0.01%를 내야 한다. 업계는 초단기 거래가 자주 일어나는 시장 특성상 거래비용 부담이 지금보다 50~7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최근 도입된 각종 규제로 파생상품 하루 평균 거래는 이달 들어 54조4780억원으로 지난해 8월 고점(84조2829억원) 대비 35.4% 줄어든 상태다. 한국거래소 파생상품본부 관계자는 “거래세가 도입되면 옵션 시장은 24%, 선물 시장은 19% 정도 위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일부 반발이 있겠지만 원칙과 명분상 물러설 수 없다”고 맞선다. 백운찬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즉시연금 비과세 혜택은 저축상품 간의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정훈 재정부 소득세제과장은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축소는 가계 빚과 자영업자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택스마겟돈 (Taxmageddon) 지구 종말 대전쟁을 가리키는 아마겟돈(Armageddon) 앞에 세금(Tax)을 붙여 세금 재앙, 또는 세금 폭탄이란 뜻으로 쓰인다. 올 초부터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등 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미국이 대선이 끝난 내년에 세금을 대폭 인상할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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