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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제조+기술 … 중기 3인 힘 합치니 수출 활로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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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힘을 합쳐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선 세 명의 중소기업 전문가들이 부산 청학동에 있는 ㈜거청의 작업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청린(55) ㈜거청 대표 조선블록 전문가, 유인선(63) ㈜서인기공 대표 특수컨테이너 전문가, 송재영(63) ㈜한국선박기술 부사장 선박엔지니어링 전문가.[사진 서인기공]

세계 시장 개척을 위해 각자의 장점을 모아 힘을 합친 중소기업들이 있다. 특수컨테이너와 철골 구조물 전문업체인 ㈜서인기공과 조선블록 전문 제조업체인 ㈜거청, 선박엔지니어링 기업인 ㈜한국선박기술이다. 이들 세 기업은 지난 1일 상호 업무협약(MOU)을 맺고 친환경 플랜트 장비인 이하우스(E-House)를 공동 제작해 수출하기로 했다. 이하우스는 일종의 이동형 전력장비다.

기존에는 플랜트가 완공된 뒤에야 각종 전기 관련 점검이 가능했지만, 이동형 전력장비인 이하우스가 있으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도 수시로 전기 계통 장비들의 점검이 가능해 공사 기간을 최장 반년가량 앞당길 수 있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중소기업 간 협업은 서인기공 유인선(63) 대표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컨테이너 제작을 주로 하던 서인기공이 이하우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일반 컨테이너의 대당 평균 가격이 150만원 선인 반면 이하우스는 대당 평균 7000만원으로 47배가량 더 비싸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유 대표는 7일 “이하우스 역시 컨테이너에 담아 운반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업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특수컨테이너를 30여 년간 만들어 온 노하우를 활용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에 특수컨테이너를 납품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은 터여서 자신감도 있었다. 현재까지 서인기공은 50동가량의 이하우스를 만들어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이하우스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고민도 생겼다. 전 세계 이하우스 시장을 주도해 온 영국와 호주 업체들의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물량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 생산규모를 키울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단기간에 대규모로 생산 설비를 키우는 것이 어렵던 차에 고교 동문인 한국선박기술 송재영(63) 부사장에게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면서 협업이 시작됐다. 여기에 조선 분야에서 탄탄한 제조 실력을 갖춘 ㈜거청의 김청린(55) 대표가 합류했다. 다른 두 회사 모두 조선업이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사업 파트너를 고른 기준은 ‘실력’ 한 가지뿐이었다. 유 대표는 “거청과는 사실 별다른 인연이 없었지만 정확한 공정을 바탕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주변의 추천이 많았다”고 전했다. 한국선박기술은 선박 및 플랜트 설계에서 40여 년간 실력을 쌓은 회사로 정부 대행검사도 하고 있다.

 세 회사 간 협업은 각자의 장점을 살린 철저한 분업이 특징이다. 이하우스 설계와 컨셉트 제작은 서인기공이 맡았다. 조선업에서 실력을 쌓은 거청은 제조를, 엔지니어링 분야에 강한 한국선박기술은 해외 바이어들의 복잡한 요구를 충족하는 추가 설비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식으로 협업이 이뤄진다. 유 대표는 “이 하우스는 건설 현장 현지의 풍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장비인 데다 최근 대형화하고 있는 추세여서 두 회사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수주에 앞서 견적을 내는 단계에서 각 회사가 챙기게 되는 수익도 미리 산정하기로 약속해 혹시 모를 잡음을 없앴다. 또 쟁쟁한 실력을 갖춘 기업들 간의 협업인 데다 추가 부담 없이 상대의 장점을 이용할 수 있는 만큼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세 회사가 만드는 이하우스는 다른 나라 경쟁업체들의 제품에 비해 20%가량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유 대표는 설명했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세 회사는 최근 나이지리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가스처리 설비사업 오투무라 프로젝트에 쓰일 125만 달러 규모의 이하우스 수출 계약을 따내고 함께 제작에 들어갔다. 대규모 제조 설비를 갖춘 거청의 합류로 초대형 이하우스 제작도 가능해졌다.

 유 대표는 “모두 각자의 강점을 살린 만큼 추가 투자 없이도 가외 소득을 벌 수 있어 윈윈(Win-Win)”이라며 “경쟁력 있는 국내 건설사들과 협력해 세계 이하우스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하우스(E-House)  석유·화학·가스 관련 다양한 플랜트 및 현장에서 전력공급을 관리하는 전력 장비를 컨테이너에 장착해 이동이 가능하도록 한 구조물이다. 건설 공사 기간 단축과 전력 설비의 재활용 등이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호주와 영국이 개발을 주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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