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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금메달 중국, 전기고문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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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1세기에 중국은 올림픽을 통해 세계로 뛰쳐나왔다. 시나리오처럼 한 번에 한 계단씩 올라섰다. 1996년 애틀랜타 때만 해도 중국은 4위였다. 미국과 러시아·독일 다음이었다. 2000년 시드니에선 독일을 따라잡고 3등에 올랐다. 4년 후 아테네에선 러시아마저 제쳤다. 금메달 32개로 중국은 미국(36개)마저 위협했다. 드디어 2008년. 중국은 세계를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올림픽은 중국의 화려한 챔피언 즉위식이었다. 금메달이 무려 51개…미국(36개)과 세계는 놀라움 속에서 곰의 쿵후를 지켜보았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굴기(<5D1B>起)를 금메달로 인증한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의 쌍두마차가 되었고, 언젠가는 중국이 맨 앞에 있을 거라는 선언이었다. 올림픽 바로 5년 전 후진타오는 세계에 화평굴기(和平<5D1B>起)를 천명했었다. 세계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 성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금메달이 평화의 상징이라면, 중국은 5년 만에 굴기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4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굴기의 바람이 지금 런던에서 다시 불고 있다. 중국은 종합 1위를 향해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런던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중국 국가 ‘의용군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수영에서도, 펜싱에서도 중국은 이제 거칠 게 없다. 13억의 거친 숨이 런던을 달구고 있다.

 런던의 중국 바람은 베이징과는 또 다른 것이다. 런던은 중국에 식민제국주의 모국(母國)의 심장부다. 19세기 초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사 중국에 밀매했다. 1840년 청(淸) 왕조가 아편을 몰수하자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청군은 참혹하게 패했고 중국은 굴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영토(홍콩)를 내주고, 배상금을 주었으며, 5개 항구를 열었다. 1860년에는 또 다른 전쟁으로 베이징이 함락됐다. 1900년 중국 의화단(義和團)이 제국주의 영사관들을 공격했으나 8개국 연합군에 격파됐다. 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일본이다.

 지금 런던에서 미국만 빼고 나머지 7개국은 모두 중국의 아래에 있다. 베이징에 이어 런던은 중국 굴기의 완결판이 되고 있다. 국민총생산(GDP)뿐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중국은 압도적인 G2가 됐다. 봉건의 시대, 서방과 일본에 짓밟혔던 중국은 더 이상 없다. 중국은 부(富)와 군대와 스포츠로 무장했으며 고대 황허(黃河)문명은 지금 21세기 차이나 문명으로 부활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부터 런던까지 중국은 강하다. 인구와 영토는 무한(無限)하고, 핵과 미사일은 가득하며, 금메달은 달러처럼 쌓인다. 하지만 강하다고 위대한 나라일까. 달러와 금메달이 위대한 문명국을 보장해줄까. 결코 아닐 것이다. 달러와 금메달은 중요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진 않을 것이다. 세계사의 위대한 문명국에는 정의와 인권이라는 위대한 정신이 있었다.

 정의와 인권에서 중국은 여전히 세계인의 의문을 사고 있다.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해 젊은 군인 46명이 죽었다. 여러 정황상 집단살인의 유력 용의자로 김정일이 지목되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5월 초 베이징에서 김정일에게 정상회담을 열어주고 선물을 주었다. 유엔 회의에서는 국제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 문책에 반대했다. 이것은 테러리스트를 보호하는 불의였다.

 런던에서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서울에선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권운동가 김영환은 중국의 전기고문을 폭로했다. 다른 피해자들은 중국 당국이 한국인 활동가들을 때리고, 잠을 재우지 않고, 학대했다고 증언했다.

 전기고문은 중국 정신사(精神史)에 오점이 될 것이다. 인구가 많고 영토가 크다고, 핵과 금메달이 많다고, 우주선을 쏜다고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게 아니다. 문명국은 정의와 인권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중국 국가와 김영환의 비명을 동시에 듣고 있다. 그러고는 묻는다. 중국은 어느 쪽인가. 야만인가 문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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