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진 진실에 햇볕 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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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사건들은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다. 한 기자가 경찰서나 관공서, 기업 등 출입처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의 100분의 1만 알더라도 매일 1면 기사나 톱 기사를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다. 세월이 지나면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도 밝혀지고야 만다.

사건에 연루됐던 누군가가 입을 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죽을 둥 살 둥하던 일들이지난 시절의 이야기 거리가 되고 말긴 하지만 그래도 묻혀진 진실의 한 부분에나마햇볕은 들게 마련이다.

국민일보 사회부 시경 출입기자를 지냈던 염성덕 기자가 쓴 〈신문엔 없다〉(컬처클럽)는 각종 압력이나 언론사 내부 사정 등으로 인해 보도되지 못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잊혀져 가는 진실들을 조명해 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의료용구 제조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자 가득에 1만원짜리 헌 지폐를 가득 채워 기자실을 찾아온 의사, 경찰공제회의 기금을 예치하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막대한 커미션을 받은 경찰관, 파출부가 재벌 집에서 거액의 다이아몬드를훔친 사실을 돈으로 막은 재벌, 돈과 빽으로 승진하려는 경찰조직내의 인사비리 구조 등 신문에는 잘 나오지 않는 사실들이 밝혀져 있다.

사건의 성격이나 사건 자체에 대한 묘사는 어느 정도 독자의 흥미를 고려해 쓴때문인지 편하고 쉽게 읽힌다.

오히려 이러한 사건들이 기사화되지 못하거나 뒤늦게야 기사화됐던 사연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힘깨나 쓴다는 곳으로부터의 압력이나 뇌물, 신문사 내부 윗선으로부터의 지시등 비리가 드러나는데, 법보다는 연줄이나 금력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 병적 구조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저자가 경찰서 이외의 사회부내 주요 출입처인 국방부를 출입하며 파악한 역대대통령들이 해군 휴양시설에서 망중한을 즐기던 때의 일화, 긴박했던 남북 국방장관회담의 뒷 이야기, 지휘관의 여장교나 부하 부인에 대한 성추행 사건 전말 등도 그려져 있다.

또 걸프전과 남극을 취재했을 때의 기록들도 소개돼 있다.

저자는 현재 국민일보를 떠나 동아닷컴에서 근무하고 있다. 288쪽. 9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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