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런던] 부인 권미리씨가 말하는 진종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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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리

“본선에서 60발을 쐈는데 150번 넘게 총을 들었다 놨어.”

 10m 공기권총 본선을 1위로 마치고 결선을 앞둔 남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습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죠. 남편은 대학 시절 수술을 받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심했어요. 제 마음은 찢어졌지만 태연한 척 “TV 중계되는 결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남편은 만년 2인자였어요. 2004 아테네 올림픽 50m 권총 결선에서 7발째 6.9점을 쏴 은메달에 그쳤죠. 그의 자상함에 반해 결혼한 저는 늘 의연함을 잃지 않는 현명한 아내가 되자고 다짐했죠. 낚시와 독서, 음악감상을 함께하며 무심(無心) 사격의 밑거름이 되고 싶었죠. 마침내 남편은 2008 베이징 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따냈죠.

 하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남편은 주위의 기대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몸도 정상이 아니었죠. 전 “금메달을 못 따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 편하게 하자”고 말해줬어요. 이번 결선 마지막 발에 가장 먼저 총을 올리고 자신 있게 쏘길래 금메달을 확신했죠. 꽃양님(꽃사슴 권씨가 양띠인 남편을 부르는 애칭). 첫아이 리오(태명)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겠다는 약속 지켜줘 정말 고마워요. 부담 없이 50m 권총을 마치고 조심히 돌아와요. 당신이 좋아하는 등갈비 김치찜 해 놓을게요.

정리=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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