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프랑스 의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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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7일 프랑스 의회 본회의장. 푸른 꽃무늬가 새겨진 하얀 원피스를 입은 세실 뒤플로(37) 주택부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기 위해 단상에 서자 갑자기 휘파람과 야유가 쏟아졌다. 예의를 모르는 군중이 아니라 동료 남성 의원들이 내는 소리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뒤플로 장관은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준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발언 내내 휘파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방송을 통해 이 장면이 생중계되고 프랑스 언론들이 이를 헤드라인 뉴스로 다루자 남성 의원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르피가로는 “정치인이 야유를 받는 일은 흔하지만, 그 이유가 원피스 때문이었다는 것은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고 점잖게 꾸짖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우리나라 재키 스미스 전 내무장관도 가슴골이 보이는 의상을 입고 의회에 나와 구설에 휘말렸지만 뒤플로 장관이 견뎌야 했던 휘파람 소리는 그보다 훨씬 더 심했다”고 비꼬았다.

 뒤플로 장관도 “건설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나로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불쾌해했다. 하지만 휘파람을 불었던 남성 의원들은 오히려 “아름다운 여성에게 경의를 표한 것” “야유가 아니라 찬사였을 뿐” 등의 뻔뻔한 대답을 내놨다.

 이 소식이 더욱 관심을 모은 것은 바로 의회가 24일(현지시간) 새로운 성희롱 처벌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여성 장관에게까지 이런 성차별적 행태를 보이는 ‘마초’ 의회가 어찌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법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불신과 비아냥이 빗발친 것이다.

 한편 프랑스 법원은 지난 5월 “현행법이 여성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며 기존 법을 폐지했다. 새 법은 성희롱을 최고 3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 규정했다. 직장 내의 성적 농담 등도 처벌 대상에 포함됐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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