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수표라더니 … ATM도 무사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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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010년 12월 경기도 남양주의 한 폐기물업체 앞마당. 김모(49)씨 등 직원들이 농협 지점에서 폐기해 달라고 맡긴 자기앞수표 수십만 장을 처리하고 있었다.

김씨는 이 중 100만원권 7장, 10만원권 342장 등 349장(4120만원 상당)을 챙겨 집으로 가져왔다.

 김씨는 올 4월 이사를 하다 수표들을 누나(57)에게 “대신 버려 달라”며 맡겼고 누나는 이를 차 안에 보관했다.

 수표를 폐기하려면 금융기관 직원 입회하에 수표에 구멍을 뚫고 파란색 횡선이 그려진 고무인을 찍은 뒤 파쇄해야 한다. 그런데 김씨가 챙겨둔 수표들에는 금융기관명이 적힌 부분에 횡선만 처리 돼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권모(13)군이 지난달 18일 오전 5시 김씨의 누나 차 안에서 폐기수표 25장(액면가 340만원)을 훔쳐 갔다.

 권군은 이 폐기수표를 갖고 이모(16)군 등 선배·친구 7명과 함께 송파구 일대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물건을 산 뒤 거스름돈을 받는 수법으로 120만원을 챙겼다. 이들은 편의점에서 폐기수표를 냈다가 “조회 결과 미발급 수표라 쓸 수 없다”고 하자 수표 조회를 하지 않는 구멍가게·과일가게·분식점 등에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세 상인들은 폐기수표 뒷장에 배서가 돼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김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은 또 권군 등 6명을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호기심에 폐기수표를 갖고 나왔지만 나는 사용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른바 ‘좀비수표’라 불리는 폐기수표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도 문제없이 사용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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