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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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내수 활성화를 위한 민관 합동 집중토론회’를 열었다. 김황식 총리와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등 나라 경제를 책임지는 인사들 30여 명이 참석해 10시간 가까이 대토론을 벌였다. 배경은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였다고 한다. 유럽과 중국, 미국 등 세계 3대 경제권의 경기가 침체되면서 우리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어들면서 상반기 수출은 겨우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판에 소비는 죽을 쑤고, 투자도 동력을 잃으면서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세계경제가 더 나빠질 경우 우리 경제는 큰 파고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감돌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라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주말인데도 토론회를 주재한 건 잘한 일이다. 임기 말일지라도 대통령이 나라 경제를 열심히 챙기는 모습, 그 하나만으로도 불안감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회 결과에는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다. 나라 경제의 책임자들이 10시간 가까이 토론한 결과가 휴가를 국내에서 보내자거나 자전거 관광상품을 만들자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장 재정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없었다. 소비와 투자가 꽁꽁 얼어붙은 지금,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정 확대에 대한 요구가 일각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판국이다. 그렇다면 내년 균형예산 달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정부의 재정정책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했다. 처음부터 공론화를 아예 차단할 일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내수 활성화 방안을 다루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골프장 소비세를 인하하고 오피스텔 등을 관광객 숙박시설로 활용하겠다는, 토론의 결과를 폄훼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내수를 근본적으로 활성화하지 못한다. 내수 부진을 풀 열쇠는 서비스 산업의 활성화에 있고, 그러려면 교육·의료·금융·사업서비스(법률과 회계) 등 고부가가치의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당연히 이들 산업에 대한 규제를 얼마나, 어떻게 풀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했다.

 물론 임기 말 정부가 국회를 설득하기 어렵고, 이해집단의 밥그릇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점은 이해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없다면 내수 부진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순 없지 않은가. 이 점을 조금이라도 유념했다면 토론 결과는 훨씬 알찼을 것이다. 정치는 임기가 있지만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는 건 상식이다. 당연히 대통령이 경제를 챙기는 데도 임기 말이 있을 순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해법을 내놓는 대토론회가 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