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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쑨원의 축복받지 못한 세 번째 결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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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호 29면

1915년 10월 25일, 도쿄의 우메야 쇼키치 집에서 식을 올린 쑨원과 쑹칭링의 결혼기념 사진. 쑨원은 쑹칭링에게 ‘19발은 적에게 사용하고 1발은 급할 때 자신을 위해 쓰라’며 실탄 20발과 권총 한 자루를 결혼선물로 줬다. [사진 김명호]

1915년 10월 25일, 도쿄에서 열린 쑨원(孫文·손문)과 쑹칭링(송경령·宋慶齡)의 결혼식은 초라했다. 하객이 거의 없었다. 다들 연락은 받았지만 참석하기를 껄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친구들 외에 중국인이라곤 그 유명한 랴오중카이(廖仲愷·요중개) 부부와 천치메이(陳其美·진기미)가 전부였다. 문 앞까지 왔다가 “에이” 하며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79>

비슷한 내용의 구술을 여러 사람이 남겼다. “루무전(盧慕貞·노모정)과 천추이펀(陳粹芬·진수분)이 눈에 어른거렸다.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내키지 않았다.” 루무전은 쑨원의 조강지처였고, 천추이펀은 쑨원이 임시대총통에 취임하기 직전까지 무려 20년간 ‘쑨원의 부인’ 대접을 받은 홍콩 여인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관계의 출발점은 감동(感動)과 호감(好感)을 따라갈 게 없다. 천추이펀은 열아홉 살 때 툰먼(屯門)의 예배당에서 쑨원을 처음 만났다. 천추이펀은 “황제를 길바닥으로 내쫓아 버리겠다”는 26세 의사 지망생의 호언장담에 감동했다. 쑨원도 천추이펀에게 호감을 느꼈다. “한미(寒微)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운 게 없다 보니 악습(惡習)에 물들 기회가 없었다. 성격도 좋았다. 뭐든지 감지덕지, 불평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일본·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 어디건 쑨원이 가는 곳에는 천추이펀이 있었다. “혁명동지들의 밥과 빨래, 온갖 위험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뭐 사먹으라면서 꼬깃꼬깃한 돈을 쥐어주며, 싱긋이 웃고 내빼던 천추이펀 생각하면 복창이 터진다”며 가슴을 치는 사람이 한 둘 아니었다.

쑨원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혁명가다. 수천 년간 내려오는 악습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고 해도 얼굴을 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신(神)이 아니다.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떨구며 긴 한숨들을 내쉬었다. 이날 쑨원은 천추이펀을 호적에 첩(妾)으로 올려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속이 답답하기는 쑹칭링의 부친 쑹자수(宋嘉樹·송가수)도 마찬가지였다. 딸을 데려오겠다며 일본으로 떠났다. “갈 필요 없다. 이미 다된 밥, 다시 쌀 되기는 틀렸다”고 말려도 듣지 않았다. 쑹자수는 도쿄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쑨원의 거처로 알려진 우메야 쇼키치(梅屋庄吉)의 집으로 달려갔다. 우메야도 쑹자수 못지않은 쑨원의 후원자였다.

쑹자수는 우메야의 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총리 나와라. 뻔뻔한 얼굴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쑨원이 밉다 보니 우메야까지 한통속으로 보였다. 집안을 향해 있는 욕 없는 욕을 튀어나오는 대로 퍼부어댔다.
우메야와 쑹자수는 평소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멀리서 온 친구를 길에 세워놓을 수 없다며 나가려 하자 쑨원이 제지했다. “이건 내 일이다. 내가 해결하겠다.”

역시 쑨원이었다. 쑹자수는 계단 위에 버티고 선 쑨원을 보자 한동안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느냐. 어디 들어보자.” 쑨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쑹자수는 맨땅에 무릎을 꿇었다. “철없는 딸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부디, 잘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세 번 절하고 자리를 떴다.

도쿄 한복판에서, 중국의 대혁명가와 후원자 사이에서 벌어진 희비극을 우메야의 딸이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 훗날 “사위가 장인에게 절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장인이 사위에게 절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중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뻔뻔함이 극에 달하면 당당해진다는 것을 모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항일전쟁 시절, 에드가 스노를 만난 쑹칭링은 우메야의 딸과 다른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나의 결혼을 파열시키기 위해 쑨 박사를 호되게 윽박질렀다. 내가 미성년이고 부모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쑨 박사와 절교했다. 나와는 부녀 관계를 청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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