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당국 직무유기가 부른 CD금리 왜곡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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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왜곡의 파장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CD금리에 연동된 대출과 파생금융상품이 당초에 알려진 규모를 훨씬 넘어서고, 기준금리 왜곡으로 인한 피해액도 그만큼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담합이나 조작 사실이 드러날 경우 벌써부터 대규모 집단소송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설사 담합이나 조작이 없었던 것으로 판명될 경우에도 금리 왜곡에 따른 손실 보상을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칠 공산이 크다. 이번 사태의 휘발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토록 엄중하다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금융시장의 안정을 책임져야 할 금융당국은 즉각 사태 수습과 책임소재의 규명에 나섰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 금융당국은 시장의 혼란을 수습하고 문제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은 제쳐둔 채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CD금리 왜곡 문제는 금융당국의 무책임한 직무유기가 화(禍)를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CD금리의 왜곡은 이미 지난해부터 제기됐던 사안이고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금융당국에 있기 때문이다. CD 발행이 급감하면서 CD금리가 사실상 기준금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당장 대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문제점을 몰랐던 게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CD금리를 대체할 새로운 금리지표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서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느라 금리지표 개발은 무산됐고, CD금리의 왜곡은 방치됐다.

 올 들어 시중 실세금리가 하락하는 데도 대출금리는 요지부동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왔을 때도 금융당국은 진상 파악과 개선책 마련에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출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CD금리가 고정됐기 때문이라는 사실만 제대로 간파했어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지가 CD금리의 왜곡 문제를 보도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조사에 나선 후에도 금융당국은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공정위 조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부처 간 협조 없이 공정위가) 독단적으로 나가면 중구난방이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만일 본지와 공정위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면 금융당국이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이번 CD금리 왜곡 사태는 금융당국의 시장 감시 및 금융회사 감독 기능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부실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데 이어 기준금리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도 수수방관해 왔다. 금융당국은 우선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대체지표의 개발과 금융시장의 혼란 방지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