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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생각만 해도 즐거워져…제2 인생 열어준 최고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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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부부 마술사 양호근, 윤은주씨가 마술로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일러스트=박향미]

“나이 든 아줌마가 하는 마술을 누가 봐 줄까 했는데 어르신들 앞에서는 제가 꽃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친근한 아줌마 마술사로 통하죠.”

 13일 천안 사직동의 한 마술 연습실. 비둘기들과 함께 마술 연습에 열중인 양호근(54), 윤은주(50)씨를 만났다. 마술은 평범한 회사원과 가정주부였던 두 사람에게 제2의 인생을 열게 해 준 최고의 선물이다. 부부가 마술을 시작하게 된 건 7년 전 우연히 문화센터 강좌를 들으면서부터다.

 “남편이 레크리에이션을 함께 배우자고 권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술을 접하게 됐어요. 남들은 몇 년씩 배워야 하는 기술을 동영상 보며 3~4개월 만에 독학으로 터득했죠. 의상과 연출을 연구하며 1~2년 사이에 사들인 마술도구만 2000여 만원이 넘었어요. 마술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윤씨는 ‘기독 성심원’에서 레크리에이션 봉사로 마술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교도소·요양병원·유치원 등 공연을 위해서라면 안 가본 곳이 없다. 양씨도 2년 전 30년 동안 다닌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본격적으로 부부마술사의 길에 뛰어들었다. 꾸준히 레크리에이션과 마술을 배워 온 그는 여러 학교와 복지관에 마술 강사로도 활동하게 돼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도 이뤘다.

 “아이들이 웃는 모습이 좋아 학교가 아무리 멀어도 달려갑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청량감을 느껴요. 매주 화요일엔 아우네 복지관에서 강의를 하는데 7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많이 오세요. 젊은 사람보다 열심히 배우셔서 어르신들 가르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윤씨가 처음 마술사가 된다고 했을 때 “20~30대의 젊은 남자 마술사들이 대세인데 그 나이에 무슨 마술이냐”며 주변 사람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때로는 프로 마술사들처럼 거창한 마술을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슬럼프가 오기도 했다.

 매번 긴장하며 무대에 오르지만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다. 속임수라는 생각을 갖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관객들도 많지만, 사실은 관객이 알아채지 못하는 실수를 했을 때 더 괴롭다고 한다.

 보통 남자 마술사와 늘씬한 미녀 보조마술사가 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은 아내가 마술을 하고 남편은 보조로 무대에 오른다. 윤씨는 “남편의 열렬한 지지 덕분에 마술사로서 일하는 여건이 좋다”며 “부부가 함께 공연 다녀 편하고 알찬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마술사를 찾는 공연이 점점 많아지면서 간단한 마술은 물론 큰 마술기구를 사용하는 고난도의 ‘일루젼 마술’까지 남편은 최고의 파트너가 돼주고 있다.

 마술은 스스로 즐기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윤씨는 꽃이 나오는 마술과 화려한 색깔의 실크로 하는 마술을 할 때 가장 즐겁다고 한다. 표정연기를 잘 해야 하는 딜라이트 반딧불 마술도 좋아한다. 관객에 따라 무대 음악도 달리하는데 학생들 앞에서는 신세대 가요를, 어르신들 앞에서는 신나는 트로트를 틀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독특한 분장의 아줌마 마술사가 비둘기와 토끼를 불러내고 꽃이 생겼다가 사라질 때마다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부부는 즐거워하는 관객들을 보며 힘을 얻고, 공연 다니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무엇보다 소중한 재산으로 간직한다. 윤씨는 새로운 삶을 사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에게 마술이란 ‘즐거운 상상’이죠. 생각만 해도 즐거워져요. 마술을 하면서 무뚝뚝했던 표정이 웃는 인상으로 바뀌게 됐어요. 그것만으로 성공인 거죠. 아마 나의 전성기는 60~70대가 될 겁니다. 멋진 할머니 마술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마술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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