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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KAL 폭파 北 소행이라도…" 문서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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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김현희(당시 25세)가 그해 12월 15일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호송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미국은 사건 발생 25년 만인 지난달 200쪽에 이르는 외교전문 57건을 기밀 해제하고 국무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중앙포토]

미국이 25년 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다룬 외교 기밀문서를 전격 공개했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987년 11월 30일부터 김현희를 특별사면한 90년 4월까지, 서울·도쿄·베이징의 미 대사관과 워싱턴 국무부 간에 주고받은 ‘KAL 858’이란 제목의 외교전문 57건이다. 문서의 분량은 200쪽에 달한다.

미국은 지난달 11일 국무부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 기밀문서에서 사건 발생 직후 미 정보당국의 자체 조사에서도 KAL기 폭파가 북한 소행임을 밝혀냈다는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먼저 88년 2월 주한 미 대사관이 워싱턴에 보고한 전문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KAL기 폭파사건 직후 김현희를 직접 조사했다. 이들은 미 정보당국이 당시 확보하고 있던 북한 공작원 26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김현희로 하여금 접촉한 인물을 고르게 했다. 김현희는 사건 직전 유고 베오그라드(2명)와 헝가리 부다페스트(1명)에서 접촉한 인물 3명을 정확히 지목했다. 미 대사관은 전문에서 이를 근거로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라고 적시했다.

 또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 외국방송정보분석기관(Foreign Broadcasting Information Service)이 88년 1월 15일 김현희의 발언을 분석, “억양 등을 감안할 때 김현희는 북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당시 북한이 마인자 초나 주중 잠비아 대사를 통해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티비(TV)’ ‘속죄’ ‘약주병’이라는 용어를 김현희가 사용한 사실을 들어 “김현희는 가짜”라고 의혹을 제기하자 미측은 이처럼 독자적으로 확보한 증거를 제시해 반박했다고 돼 있다.

 임기 말인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북한의 소행이라 하더라도 북한에 보복하지 않겠다고 미측에 약속했다는 점도 새로 드러난 사실이다.

 전 대통령은 88년 1월 14일 제임스 릴리 주한 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88 올림픽을 앞두고 있음을 지적하며 “보복은 마지막 옵션(선택)”이라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1월 7일 방한한 스티븐 솔라즈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북한이 폭파 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어도 군사 보복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했다.

 당시 서울·도쿄·베이징 대사관이 워싱턴에 보낸 외교전문들을 분석해 보면 KAL기 폭파 사건을 놓고 한국·미국·일본 3국 간 공조가 긴밀했음을 알 수 있다.

 릴리 주한 미대사가 88년 1월과 2월 워싱턴에 보낸 외교전문에는 한국 외교부의 최광수 장관과 박수길 차관이 김현희 조사 상황을 수시로 릴리 대사를 통해 미측에 전달한 내용이 들어 있다. 도쿄 주재 미국대사관의 전문에는 일본 외교부의 다나카 북동아시아국장에게 미 정부의 조사 내용을 전달하고,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조사 결과를 미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 국무부의 이번 문건 공개는 정해진 기밀 해제 시점보다 앞당긴 것이다. 90년 4월 릴리 대사의 후임인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 대사가 조사 결과를 본국에 보고한 전문의 경우 기밀 해제일이 2022년 12월 12일로 찍혀 있지만 10년이나 앞당겨 공개했다. 미 국무부 측은 “자체 심사를 거쳐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국 내에서 KAL기 폭파사건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을 감안해 조기 공개를 결정했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 문서 중 일부는 한때 FBI(연방수사국) 문서로 알려졌으나 FBIS 문서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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