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냐 물가냐 정책 선택 고심

중앙일보

입력

3월 물가가 0.6%나 오르자 물가관리는 물론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르면 2분기로 기대했던 경기회복이 하반기에나 가시화할 조짐이고, 우리 경제의 의존도가 높은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나빠 성장률도 4%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판에 물가마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급한 대로 공공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뤘다. 그러나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올릴 수 있는 공공요금은 계속 들먹거리고 있다.

공공요금이야 어느 선까지 정부가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수입물가에 영향을 미쳐 결국 전반적인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환율이 문제다.

경제상황이 나빠 자꾸 하락하는 일본 엔화가치와 함께 떨어지는 원화가치(달러화와 대비 원화 환율은 오름)를 정부의 의지로 막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 내에서는 물가와 성장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물가관리를 우선하는 한국은행은 물가 때문에 금리인하와 같은 정책을 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거시경제 정책을 맡는 재정경제부는 금리를 내려서 성장동력을 살리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 3%대 물가관리 목표 지켜질까〓원화가치가 얼마나 떨어질지에 달렸다. 3년 동안 올리지 않은 택시 요금과 쓰레기봉투 요금 등 하반기로 미룬 공공요금 인상폭도 적지 않다.

정부는 소비자물가 관리목표를 잡을 때 연평균 환율을 1천2백원대 후반으로 보았다. 그러나 원화가치는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10% 넘게 떨어진 1천3백원대에 들어선 지 오래다. 원화가치가 10% 떨어져 연중 1천3백원대 초반을 유지하면 물가는 1.3~1.5%포인트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재경부 오갑원 국민생활국장은 "올들어 3월까지 원화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올랐다는 징후는 없다" 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돼 원화가치 하락효과를 상쇄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간 연구기관들은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대로 보고 있다.

금융연구원 정한영 경제동향팀장은 "엔화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원화가치 하락이 상반기 중 계속될 것이므로 하반기에도 물가상승률은 4%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 경기진작이냐 물가관리냐〓이대로 가다간 정부가 성장과 물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국 경제가 1%대 성장률로 경착륙하면 국내 경제 성장률도 최악의 경우 4%대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물가까지 오르면 '저성장, 고물가'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성장과 물가관리 중 어느 것이 우선이냐를 놓고 정부 내에서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다. 전철환 한은 총재는 최근 "환율과 공공요금이 안정되지 않으면 올 물가상승 목표치를 달성할 수 없을 것" 이라며 물가안정을 강조하며 금리인하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재경부는 한은이 금리를 내려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최근 물가상승이 유가와 환율 변화에 따른 비용상승 요인에 따른 것이므로 금리를 내리더라도 경제에는 큰 충격이 없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물가 걱정으로 신축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했다가 경기가 곤두박질하면 그동안 해온 구조조정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고 지적했다.

송상훈.정철근 기자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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