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정희 평가, 공과를 함께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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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박근혜 의원이 밝힌 5·16과 유신에 대한 견해는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인식론과 연결돼 있다. 박 의원은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 ‘바른 선택’이라고 했고, 유신에 대해선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5년 전 한나라당 경선 때 ‘5·16은 구국의 혁명’이란 용어를 썼는데 이번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보수적인 한나라당 대의원을 상대로 한 경선이었기에 5·16 문제는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이번엔 편협 토론이 일반 유권자를 상대로 한 데다가 야권과 좌파진영에서 박근혜의 역사관 문제를 증폭시켜온 터라 박 의원이 수위를 낮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박 의원의 기본인식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민주당은 맞춰서 “5·16쿠데타가 바른 선택이었다면 전두환의 12·12쿠데타도, 일제 식민지 지배도 근대화 혁명이 된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박근혜는 대선 정국에서 밝음과 어두움이 섞여 있는 한국 현대사의 한쪽 면만 보고 있다. 이러니 역사 논쟁이 흠집내기 위해 묻는 자와 앵무새처럼 답하는 자의 핑퐁게임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5·16을 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한 군사쿠데타라는 면만 강조한다.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국가 형성 단계에서 대외개방, 기아탈출, 자주국방, 중화학공업의 철학과 정책으로 전후 제3세계 다른 나라들이 모두 실패한 근대화 혁명을 성공시킨 점을 굳이 외면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당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박근혜 의원은 5·16 민주 파괴와 유신 독재정권으로 인해 피해 본 사람들에 대해 사과만 했지 그에 따르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역사적 사실이 그러하듯 5·16과 유신엔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화해 물꼬를 텄다면 이면엔 법을 어긴 현금 퍼주기의 잘못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경유착을 현저하게 줄인 공이 있다면 사회를 온통 편가르기 싸움판으로 몰아넣은 과가 있다. 박정희 시대를 평가할 때도 다른 정권과 마찬가지로 공과 과를 함께 봐야 하는 균형성이 필요하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보자는 ‘역사 공과론’은 대선 승리에 몰두하는 바람에 놓치기 쉬운 국민통합의 절실함을 상기시킨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마오쩌둥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덩샤오핑은 마오의 역사적 과오만 들춰내지 않았다. 그는 집권 과정에서 “마오 동지의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라고 선언했다. 덩샤오핑은 역사 공과론을 통해 찢겨진 국민을 통합하고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 갔다. 역사는 정치를 관통하면서 미래에 봉사해야 제 가치를 찾는다. 한국 대선의 역사 논쟁은 공과 과를 함께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