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보리밥촌, 철거 대신 명소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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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수원시가 무허가로 운영되는 광교산 일대 보리밥집의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 식당은 상수원보호구역 안에 있어 영업 자체가 불법이다. 사진은 광교산에서 영업하는 보리밥집 전경. [사진 수원시]

등산을 즐기는 회사원 김진우(43·수원시 장안구)씨는 경기도 수원의 광교산을 유독 좋아한다. 등산로가 완만한 데다 물맛이 좋은 약수터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등산을 끝낸 뒤 산 아래 보리밥집에서 먹는 비빔밥과 막걸리 한 사발은 즐거움 그 자체다. 김씨는 “보리밥을 먹기 위해 서울 등지에서 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광교산은 휴일이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등산객 5만 명이 찾아온다. 이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 산 아래 보리밥촌이다. 모두 35집이 운영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된 가게 형태 대신 단독주택을 개조하거나 대형 천막, 비닐하우스를 치고 영업하고 있다.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광교산이 있는 수원시 장안구 상·하광교동 일대 10.279㎢는 1971년 6월 상수도보호구역과 그린벨트로 지정돼 음식점이 들어설 수 없다. 이 때문에 수원시와 보리밥집들 간에 마찰도 끊이질 않는다. 식당마다 매년 수백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고 있으며 지난해 6월에는 강제철거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등산객들이 “광교산 명물을 없애면 안 된다”고 반발해 몇 달 만에 영업이 재개됐다.

 최근 수원시가 아예 이들 보리밥집을 합법화하기로 했다. 철거 대신 지역명소로 양성화하는 방안을 택한 것이다. 상수원보호구역인 광교산의 일부 면적을 일반·휴게음식점 영업이 가능한 환경정비구역으로 변경할 방침이다. 수원시는 16일 경기도에 장안구 상·하광교동 11개 마을(201가구)을 환경정비구역으로 변경하기 위한 환경정비계획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환경정비구역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이전에 형성돼 있는 자연부락으로 하수 처리가 가능한 경우에 지정 가능하다. 수원시는 이미 2000년 광교동 일대에 음식점 영업이 가능하도록 하수관거 등의 설치를 완료했다.

 경기도가 승인을 하면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이전부터 거주해 온 원주민은 면적 100㎡ 이내에서 주택을 음식점으로 용도를 변경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광교산에서 원주민이 운영하는 보리밥집 13곳이 합법화되는 것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이르면 2014년이면 전환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합법화 대상이 아닌 나머지 22곳의 보리밥집은 여전히 문제로 남게 된다. 이들 식당은 원주민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A보리밥집을 운영하는 김모(49)씨는 “40년을 넘게 살고 장사를 해 왔는데 원주민이 아니라고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민은 수원시에 나머지 식당들의 구제를 요청한 상태다. 수원시 관계자는 “식당들이 반발한다고 해서 모든 불법영업을 합법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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