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회 흔들던 'X세대', 이것 때문에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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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직장인 강모(39)씨는 한 달에 저축하는 돈이 5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외벌이인 그는 아파트 대출금 이자로 한 달 80만원, 두 자녀 학원비로 한 달에 100만원가량 쓴다. 저축형 보험에 월 30만원을 넣기 시작한 지도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금융사에선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하려면 월 적립금을 더 늘려야 한다지만 도저히 여력이 없다”며 “그렇다고 남들 다 보내는 학원을 안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준비에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한때 ‘X세대’로 불리며 사회 문화를 바꿔놓은 68~74년생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차 베이비붐 세대 700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은퇴 준비를 한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11일 밝혔다.

 2차 베이비붐 세대는 명실상부한 한국 경제의 허리다. 만 38~44세로 직장에서 한창 일할 나이다. 나이당 인구가 평균 85만2000여 명으로 1차 베이비붐 세대(77만여 명)보다 많다. 전체 인구의 12.4%를 이들이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이들 중 은퇴 뒤 재정 준비를 시작한 이는 44.6%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중의 대부분(93.5%)이 서른다섯 살이 넘어서야 준비를 시작했다. 마흔 살이 넘어 노후 재정 준비를 시작한 이도 41.7%나 됐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자녀 교육비였다. 이들은 월평균 가계 지출 중 14.8%를 자녀 교육비로 쓰고 있었다. 양육비까지 합치면 월 지출의 20.8%를 자녀에게 쏟는다. 실제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이유로도 절반 정도(48.7%)가 자녀 교육비를 꼽았다.

 대출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응답자의 45.6%가 빚을 지고 있었고, 평균 빚은 3301만원에 달했다. 은퇴 시기에 접어든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부채 보유율(38.5%)과 평균 부채 규모(4087만원)와 비교하면 부채 보유율은 오히려 더 높은 것이다.

 전문가는 우선 이들이 씀씀이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권한다. 자녀 교육·양육비 지출을 일정 부분 줄여야 노후 대비를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원경 KB 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가치관의 문제라 대놓고 교육비를 줄이라고 권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면서도 “ 노후 대비 역시 자녀 교육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지출 규모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산 재분배도 필수적이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자산은 3억7000만원. 이 중 부동산 자산이 3억800여만원(83.3%)으로 압도적이었다. 허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연구원은 “이제 막 내 집을 마련할 나이라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며 “다만 향후 자산을 늘려나갈 때 금융 자산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형 상품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해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차 베이비붐 세대는 평균 4800만원의 금융 자산 중 86.4%를 예·적금, 보험 등 안전형 상품에 투자하고 있었다. 황원경 연구원은 “이들이 1997년 외환위기 무렵 사회에 발을 내디딘 뒤 2003년 카드 사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고스란히 겪으며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된 것 같다”며 “더 적극적으로 투자 정보를 수집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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