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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금리 파괴에 볼멘소리만 낼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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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요즘 은행권 최고의 ‘핫이슈’는 산업은행의 수신 금리 인상이다. 지난해 연 3.5%를 주는 온라인 보통예금, 연 4%대 정기예금을 선보인 데 이어 9일에는 연 2.5%의 이자를 주는 오프라인 보통예금까지 내놓았다. 다른 은행의 보통예금 금리가 20년 가까이 연 0.1%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말 그대로 ‘파격’이다.

 이런 산은의 금리 실험을 두고 다른 은행은 볼멘 표정이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지나친 금리 덤핑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국책은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다른 은행에서도 “취지는 좋지만 포퓰리즘이 될 것” “인프라에 제한이 있으니 오래 못 간다” 등 비판 일색이다.

 하지만 금융 소비자의 반응은 뜨겁다. 산은의 고금리 상품은 출시 9개월 만에 총 2조10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고객이 얼마나 금리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은행권에서는 수시로 돈이 빠져나가는 보통예금에 높은 금리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엄살을 떤다. 하지만 은행 전체로 보면 보통예금 잔액은 총 예금의 10% 정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인 금융채의 금리가 3.8%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공짜로 운용자금을 고객으로부터 빌리는 셈이다. 여기에 기준금리와 비슷한 선진국의 보통예금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국내 은행도 금리를 올릴 여력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익을 거둔 국내 은행이 이자로 벌어들인 이익은 39조원이나 된다. 부문별로 가장 많은 금액이다. 예금 고객에겐 이자를 덜 주고 대출자에겐 높은 금리를 물린 결과다. 이처럼 예대마진으로 살을 찌운 은행이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줄 생각은 않고, 되레 높은 금리를 주려는 경쟁 은행에 쓴소리만 퍼붓는 모습을 고객이 수긍할지 모르겠다.

 십수 년간 주거래 통장을 유지하고, 각종 수수료를 내고도 은행원의 친절한 웃음 외에 실질적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게 한국 고객의 현실이다. 금리 파괴 실험에 나선 강만수 산업은행장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고개 숙이고 인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금리를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고객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고객이 은행으로부터 진정으로 받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