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항암제 잘 안 듣는 이유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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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 몸에는 암 세포를 죽게 하거나 이상하게 늘어나는 것을 억제하는 여러 유전자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유전자가 p53으로 ‘항암 유전자’라고도 불린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p53을 이용해 항암 신약을 만들려는 노력을 수없이 해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항암 유전자의 조절 원리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인데 국내 연구진이 이를 풀어냈다.

 성균관대 약학대학 한정환(51·사진) 교수팀은 10일 노화 단백질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는 걸로만 알려진 효소 ‘핌트(PIMT)’가 항암 유전자(p53)의 기능을 억제해 결과적으로 암을 유발하거나 촉진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p53의 조절 원리를 응용한 새로운 항암 신약 개발 가능성이 커졌다. 연구 결과는 영국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6월 27일자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핌트 효소의 활동이 활발한 악성 암세포에서 p53이 감소한 것에 주목했다. 또 핌트의 활동이 많았던 암 환자의 생존율이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20% 정도 낮다는 사실도 새로 알아냈다.

 연구 결과 핌트가 p53의 분해를 촉진토록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핌트가 p53의 분해를 촉진하는 단백질이 잘 달라붙도록 촉진하고 결국 p53이 크게 감소해 항암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상 세포가 암 세포로 바뀌거나 기존 암은 이상 증식이 촉진된다. 이는 핌트를 잘 조절하기만 하면 p53의 기능을 오히려 강하게 만들거나 정상화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실제로 인간 암 세포에서 핌트 자체를 없애버리자 암 세포가 완전히 죽는 현상을 확인했다. 또 핌트가 p53을 조절하는 원리가 인간의 암 세포에서만 특이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하지만 이를 이용한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먼저 핌트를 조절할 수 있는 후보 약물을 찾아내야 한다. 또 각종 실험을 거쳐야 해 신약 개발까지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전망이다. 한 교수는 “암 치료제를 개발할 때 가장 강력한 항암 유전자인 p53의 조절 원리를 밝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며 “이번에 그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는 확실한 목표를 찾아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p53=세포의 사멸을 유도하고 이상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 ‘tumor protein 53’(종양단백질 53) 또는 ‘항암 유전자’라고도 부른다. 이 유전자가 제 역할을 못하면 세포에 돌연변이가 생겨 암세포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암세포에서 p53 유전자에 이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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