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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마디 대선 슬로건 전쟁 막올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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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호 01면

# 지난 4월 프랑스 대선. 니콜라 사르코지 대중운동연합 후보는 ‘강한 프랑스(La France forte)’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5년 전 그는 ‘함께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로 승리했다. 사르코지에 맞선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 역시 ‘변화는 바로 지금(Le changement, c’est maintenant)’으로 글자 수를 줄였다. 5년 전 같은 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의 슬로건은 ‘더 공정하면 프랑스는 더 강해진다’였다.

# 11월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슬로건은 ‘앞으로(Forward)’다. 자신의 업적을 기반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을 담았다. 그는 4년 전 ‘그래, 우린 할 수 있어’(Yes, we can)로 승리했는데 더 압축했다. 경쟁자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미국에 대한 믿음’(Believe in America)을 들고 나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슬로건 전쟁’이 뜨겁다. 멕시코·인도·베네수엘라 등 60여 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지구촌 선거의 해’이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슬로건은 선거전의 백미다. 정치 현장에선 “훌륭한 슬로건이 100분의 연설이나 1000명의 선거 운동원보다 낫다”고 말한다. 정치 슬로건이 유권자의 투표 의사 결정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슬로건 때문에 투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밝힌 사람이 33%였다. 특히 20~30대는 슬로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4·11 총선이 끝나고 연말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판에서도 슬로건 전쟁이 시작됐다. 새누리당은 “국민과의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란 슬로건으로 총선에서 승리했다. 지난달엔 “변화, 미래, 함께”란 새 슬로건을 내놨다. 민주통합당은 “심판해야 바뀝니다”가 총선 때부터 슬로건이다.

대선 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얼마 전부터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내걸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란 메시지를 꾸준히 전한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선 주자가 선거 슬로건을 마무리했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고문과 정세균 고문은 각각 ‘저녁이 있는 삶’과 ‘빚 없는 사회’로 정했다. 새누리당의 김문수 경기지사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각각 ‘함께 갑시다. 위대한 대한민국’과 ‘걱정 없는 나라’를 들고 나왔다.

대체로 성공한 슬로건엔 시대 정신이 담겨 있다. 1956년 3대 대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란 슬로건을 만들었다. 이게 부정부패 척결과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민심에 파고들자 여당인 자유당은 ‘구관이 명관이다’로 맞붙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가 만들어낸 ‘변화’와 ‘그래, 우린 할 수 있어’는 경제 위기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단절을 요구하는 의미가 있었다.

한국에서 해방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대선·총선·지방선거·교육선거)에 쓰인 슬로건 5만3832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일꾼’(7565건)이었다. 슬로건 제작 전문업체 ‘브랜드OK슬로건’ 측은 “유권자를 위해 일을 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부각시키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2~5위는 ‘사람’(4951건), ‘함께’(2283건), ‘깨끗한’(2237건), ‘선택’(2068건) 순이었다. ‘사람’은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의 ‘보통 사람’, ‘깨끗한’은 15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 슬로건에 들어갔다. 이들 단어는 각각 권위주의 청산과 부정부패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됐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가 펼쳐져 시대 정신에 맞는 슬로건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확장될 수 있게 됐다”며 “적절한 슬로건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전문가 김형남 이름세상 대표는 “슬로건은 전선(戰線)을 가르고 구도를 짜는 전략적 메시지”라며 “2012년 대선의 시대 정신인 경제민주화, 양극화, 복지를 어떻게 압축시켜 공감대를 얻느냐가 슬로건 성공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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