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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 하마” 야수와 스릴 넘치는 ‘게임 드라이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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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이 풀을 뜯는 케냐의 초원. 펼친 우산처럼 생긴 나무는 한낮에 동물이 쉬는 그늘막이다. 이런 나무의 상당수가 아카시아 일종이다. [사진 케냐 관광청]

“냄새 나니?” “아니. 무슨 냄새?” “저기, 하마.”

마사이족 출신의 안전요원은 서울에서 날아간 도시인과 후각이 달랐다. 어둠 속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그제야 도시인도 하마를 알아봤다. 하마는 야행성이다. 해가 지자 물 밖에 나와 밤새 먹이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몸무게는 최대 3t에, 입으로 무는 힘이 대단하단다. 초식동물이라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이유다. 밤에 로지(오두막형 숙소) 안에서 이동 시 안전요원을 동반하라는 얘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짜릿했다.

하마에게 스와힐리어로 “잠보!”(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여기는 아프리카, 케냐다.

1 마라강 부근에서 만난 도마뱀. 2 암보셀리 평원의 코끼리. 양쪽 귀를 펼치면 얼굴이 아프리카 대륙 모양이 된다. 3 마사이마라 초원을 굽어보는 사자. 4 나쿠르 호수 주변의 코뿔소.[사진 3·4 한진관광 윤인균]

케냐에는 동물들이 산다. 동물원이 아니라 드넓은 초원에 산다. 마사이마라가 그런 대표적 초원이다. 사자와 표범 같은 맹수까지 볼수 있는 곳이다. 면적이 서울의 2.5배나 된다. 케냐 국립공원 중에도 첫손 꼽히는 사파리 명소다. 이곳에 들어서자 이방인의 눈에 보이는 건 풀이 한 길 가까이 자란 초원, 그리고 점점이 우산을 펼친 듯한 나무들뿐이다. 17년 경력의 현지인 가이드는 달랐다. 얼마 되지 않아 관목 그늘에서 쉬는 사자 두 마리를 찾아냈다. 곧이어 초원을 거니는 네 마리 사자 곁으로 사륜구동차량을 안내했다. 반면 표범을 찾아나선 오후의 사파리는 허탕을 쳤다. 새파랗던 하늘이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초식동물마저 움직임을 멈추고 자취를 감췄다. 한곳에 사파리 차량들이 몰려있다. 가보니 풀숲에 잠든 사자의 누런 털만 보인다. 입이 근질거린다. 아까 사자를 여섯 마리나 봤다고 자랑하고 싶어서다. 그래도 ‘하쿠나 마타타’(‘괜찮다, 문제없다’는 뜻의 스와힐리어)다. 비에 젖는 초원, 파란 하늘과 검은 구름의 교차, 천둥·번개 치는 사바나의 풍경이 볼 만했다.

초원에 떼로 모여있는 물소. 가까이서 보면 앞머리가 5:5 가르마다. [케냐 관광청]
아기를 업고 지나가던 마사이 여성에게 포즈를 청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 주변이다.

사파리를 여기서는 ‘게임 드라이브’라고들 부른다. 과거 한때 ‘사파리’(‘여행’을 뜻하는 스와힐리어)는 동물사냥을 뜻했다. ‘게임’도 사냥감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현지인 가이드는 “운(運)의 게임”이라고 풀이했다. 운에 따라 동물을 볼 수도, 못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은 운을 높이는 방법, 아니 운이 높아지는 때가 있다. 매년 7~9월 언저리는 탄자니아 쪽의 세렝게티에서 케냐 쪽 마사이마라로 동물들이 대이동을 하는 시기다. 이 무렵이면 누,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들이 수백, 수천 마리씩 떼지어 이동한다. 국경은 사람들이 그어놓은 선일 뿐 동물들에게는 하나로 연결된 초원이다. 비자는 필요 없다. 대신 마라 강을 건너는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강을 건너던 어린 누가 악어에게 잡아먹히거나 누 떼에 악어가 밟히는 사투가 벌어진다. 6월 말의 마라 강은 그 같은 스펙터클 대신 지극히 평온했다. 초콜릿처럼 진한 강물에서 나른한 표정으로 짝짓기하는 하마들을 실컷 봤다.

케냐는 남한 면적의 약 6배다. 각지의 국립공원마다 지형도, 동물도 특색이 있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남쪽에 자리한 암보셀리는 초식동물, 그중에도 코끼리를 떼로 볼 수 있는 명소다. 새끼를 거느린 코끼리 떼는 저만치 보이는 것만도 고마웠는데, 사파리 차량 앞을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곳의 로지 주변은 전기울타리를 쳐놓았다. 밤에 코끼리의 접근을 막기 위한 예외적 조치다. 이곳만의 또 다른 볼거리는 킬리만자로다. 국경 너머 탄자니아에 자리한 아프리카 최고봉이다. 남쪽으로 보이는 킬리만자로를 제외하면 시야를 막는 게 없는 평지다. 지평선을 거대하게 물들이는 석양과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설을 모두 볼 수 있다. 날씨가 좋다면 말이다.

암보셀리로 가는 길에 들린 휴게소 겸 기념품 가게의 화장실 표시.

서쪽의 나쿠르 호수는 물과 초원, 언덕과 숲이 어우러진 곳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코뿔소, 물소처럼 듬직한 동물들과 임팔라, 가젤 같은 날렵한 동물이 각각 어울려 모습을 드러낸다. 멸종위기종인 검은코뿔소는 케냐 최초의 코뿔소 보호구역인 이곳에서도 귀한 존재다. 좀체로 눈에 띄지 않는다. 듣자니 이름처럼 검지는 않단다. 우리 일행이 본 흰코뿔소도 마찬가지다. 둘 다 회색에 가깝다. 현지인의 말을 유럽인들이 잘못 알아들어 '흰'코뿔소가 됐단다. 흰코뿔소는 본래 다른 지역에 살던 것을 1980년대에 데려왔다고 한다. 호수 주변은 관학, 펠리컨, 비서새 등 날짐승도 천지다. 모두 450종이나 된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퍼드와 메릴 스트리프가 경비행기를 타고 낮게 날던 곳이 바로 이 호수다. 영화 속에서는 플라밍고 떼의 분홍빛이 장관을 이뤘다. 막상 이곳을 직접 찾았을 때는 몇 마리에 그쳤다. 가이드는 플라밍고들이 주변 세 개의 호수를 오가며 산다고 들려준다. 대신 아카시아 숲 사이로 펼쳐진 초원에서 물소와 기린이 각각 떼를 이룬 모습을 만났다. 이곳의 아카시아는 큰 키에 줄기가 노란 것이 특징이다. 햇빛을 받으면 노랑색이 더욱 화사해진다.

사파리 도중 차에서 내려 걸을 기회는 많지 않다. 또 다른 호수 나이바샤의 보트 사파리는 그런 점에서 이색적인 체험이다. 특히 호수 안의 크레센트 섬은 배에서 내려 걸어다니며 동물을 볼 수 있다. 초승달(크레센트)처럼 생긴 이 섬은 기린, 누, 얼룩말 등 초식동물만 산다.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나뭇잎을 먹는 기린에게 살며시 다가간다. 동물 속을 거니는, 동물 중의 하나가 된 기분이다. 이곳의 아카시아는 줄기에 가시가 촘촘하다. 기린의 혀는 가시를 피해 솜씨 좋게 잎만 훑어낸다. 수면이 낮아지면 섬은 육지와 연결되곤 한다. 섬의 안내인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찍으면서 제작진이 섬에 동물을 들여왔다고 들려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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