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최근 어떤 논의 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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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단임의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이다. 독재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데 치중한 현행 헌법을 고치자는 얘기는 내각제론자인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는 1997년 대선 정국에서 김대중(DJ)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 DJP연합을 결성하면서 내각제 개헌을 약속받았다. 김대중 총재가 집권하면 2년 뒤 내각제 개헌을 추진한다는 게 연합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DJ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내각제 개헌론은 JP의 부침과 함께 정치권에서 사실상 소멸됐다.

 개헌론에 다시 불이 붙은 건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서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일명 ‘원포인트(One Point) 개헌’을 제안했다. 헌법의 여러 조항을 다 바꾸려면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 권력구조 부분만 대통령 4년 연임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 문제였다. 노 대통령의 제안은 정치판을 흔들려는 ‘꼼수’가 아닌가 의심했던 한나라당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결국 여야는 개헌을 다음 국회(18대)의 숙제로 미뤘다.

 2008년 총선이 끝난 뒤 개헌을 논의하기로 합의한 거다. 18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이주영(한나라당)·이낙연(민주당)·이상민(자유선진당) 의원이 주축이 된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발족했다. 2009년 개헌절 경축식에선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이 개헌 논의를 정식 제안하면서 “내년(2010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새로운 헌법안을 마련해 국민투표까지 마무리해 달라”고 일정까지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초반의 ‘쇠고기 파동’ 등으로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개헌 논의는 의제에서 밀려났다. 이 대통령은 2009년 하반기부터 다시 개헌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은 2010년 특임장관에 임명되면서부터 이 대통령을 대리해 개헌을 추진했다. 하지만 박근혜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지를 흔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결국 18대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는 여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 길을 잃었다. ‘개헌 전도사’로 불리던 이재오 의원은 당시 “정권 초엔 (임기가 많이 남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개헌 논의를) 못하고, 임기 말엔 다음 대통령 가능성이 큰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못한다”고 했다. 개헌을 공론화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말이다.

◆특별취재팀=신용호·김정욱·채병건·고정애·박신홍·김정하·정효식·강인식·백일현·양원보·이소아·김경진·허진·류정화·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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