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투수들, 이러면 벌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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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롯데 3루수 황재균이 5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SK전이 비로 취소되자 우천 세리머니로 홈 슬라이딩을 하고 있다. 최근 구단들은 슬라이딩에 익숙하지 않은 투수들에게 우천 세리머니 금지령을 내렸다. [부산=김민규 기자]

비로 인해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되면 팬들은 스타 플레이어의 이름을 연호한다. ‘우천 세리머니’를 요청하는 소리. 선수들은 비에 젖어 미끄러운 방수포 위를 달리고 슬라이딩을 한다. 팬 서비스다. 하지만 몸이 재산인 선수, 선수가 재산인 구단에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정작 ‘경기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팬 서비스를 놓칠 수도 있다.

 이만수(54) SK 감독은 ‘투수들의 우천 세리머니 금지령’을 내렸다. 이 감독은 3일 “이미 지난 일이고, 처벌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어서 이번에는 넘어가지만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벌금을 매기겠다”고 밝혔다. 그는 “트레이너들은 물론 성준 (투수)코치에게도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수위를 높였다. 왼손 에이스 김광현(24)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김광현이 등판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문학 LG전이 우천으로 취소됐다. 팬들이 “김광현, 김광현”을 외쳤고 머뭇거리던 김광현이 그라운드에 섰다. 김광현은 2루에서 한 번, 홈에서 한 번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김광현은 투수다. 슬라이딩에 익숙하지 않다.

 이틀 뒤 김광현은 LG전에 선발 등판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 전부터 어깨에 이상을 느꼈고, 결국 2이닝(무피안타 무실점)만 소화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2일 병원을 찾아 정밀진단을 받았고 “왼 어깨 근육이 부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간의 휴식이 필요한 부상이다. SK는 “김광현의 부상은 우천 세리머니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의 생각은 다르다. 이 감독은 “야수가 아닌 투수, 특히 에이스가 우천 세리머니를 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위험한 일은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팀 전체의 문제다. 광현이와 통화했는데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하더라. 이런 일이 또 발생할 경우에는 처벌하겠다”고 했다.

  김광현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종료와 함께 왼 어깨 재활에 돌입했고, 6월 2일에야 뒤늦게 1군에 복귀했다. 모두가 김광현의 어깨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행동을 했다.

 ‘에이스의 우천 세리머니’는 상대팀에도 교훈을 안겼다. 양승호(52) 롯데 감독은 “투수 코치와 트레이너에게 ‘투수들의 우천 세리머니를 절대 금한다. 혹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벌금을 매길 것이다’고 말해뒀다”고 밝혔다.

 이날 프로야구 4경기는 비로 모두 취소됐다. 사직구장 롯데-SK전도 열리지 못했다. 그런데 홈팀 롯데는 또 우천 세리머니를 했다. 단 3루수 황재균 한 명이 ‘대표’로 했다.

부산=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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