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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의 힘 … 힉스입자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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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소속 과학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힉스입자(Higgs boson)로 추정되는 새로운 소립자(素粒子)를 발견했다고 밝혀 전 세계 물리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CERN 측은 “이 입자의 존재 확률은 99.99994%”라고 발표했으나, 새로 발견된 소립자가 확실한 힉스입자인지는 추가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거쳐 12월께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표준모형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17개 입자로 구성돼 있으며, 힉스입자는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해 서로 뭉치게 한 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상상 속의 입자였다. 1964년 피터 힉스가 최초로 가설로 제시한 이 입자는, 그 중요성을 간파한 고(故) 이휘소 박사가 ‘힉스입자’라 이름 붙여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미국 등이 재정위기와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일궈낸 개가(凱歌)여서 더욱 돋보인다. CERN은 100억 달러(약 11조4000억원)를 들여 지하 100m 지점에 둘레만 27㎞에 이르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세우고, 지난 14년간 양성자 빔을 빛의 속도로 가속한 뒤 서로 부딪히게 하는 실험을 거듭해 왔다. 전 세계 40여 개국 과학자들의 노력과 막대한 연구비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연구였다. CERN이 지난해 말에 이어 또다시 중간 발표를 감행한 것도,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연구가 중단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초과학 연구는 언제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실용적인 응용·파생연구에 치중하는 흐름이 나타나지만 길게 보면 기초과학 발전 없이 결코 경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현재의 인류 황금기가 과거의 기초과학 투자에 힘입었던 만큼 지금의 경제 위기는 기초과학에 최고의 투자 기회일 수 있다. 우리도 지난 5월 자율적인 연구를 보장하는 기초과학연구원을 세웠다. CERN의 새 입자 발견처럼 길게 보고 묵묵히 받쳐줘야 한국의 기초과학에 새 지평이 열릴 수 있다. 국가경쟁력의 원천과 새로운 도약의 발판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