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IE] 은정이네는 토요일 저녁마다 신문 펴놓고 이야기꽃 피워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경기도 일산에 사는 원선희(오른쪽)씨는 “NIE 덕분에 딸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게 가장 큰 성과”라며 웃었다. 사진 왼쪽부터 아버지 박상곤씨, 큰딸 박은정양, 막내 박민선양.

중앙일보 열려라 공부는 올 1월부터 ‘찾아가는 NIE’ 시리즈를 진행했다. NIE에 관심은 있으나 지도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는 학부모·교사·학생의 사연을 받아 NIE 전문가와 함께 직접 독자의 가정·공부방·학교를 방문해 NIE의 지도 노하우 등 궁금증을 풀어줬다.

1월 4일 ‘찾아가는 NIE’ 시리즈를 알리는 첫 기사와 신청 알림이 나가자 독자들의 e-메일이 쏟아졌다. ‘신문으로 아이의 창의력을 길러주고 싶다’는 학부모의 사연,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할 수 있는 NIE 포트폴리오 제작 방법을 알려달라’는 수험생의 신청이 가장 많았다.

교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국어·사회·과학·영어 등 다양한 교과 수업에 신문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문의, ‘교내 NIE 동아리를 활성화하고 NIE 관련 대회도 운영하고 싶다’며 교사 연수를 신청한 학교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까지 격주로 진행한 ‘찾아가는 NIE’ 시리즈는 12곳의 교육 현장을 방문했다. 서울 명덕외고 김영민 교사, 숭의여대 심미향 강사, 고양 화정초 이정균 교사 등 NIE를 지도한 지 10년이 넘는 베테랑 교사와 강사들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재능 기부에 나섰다.

이들의 방문 뒤 가정과 학교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전문가들이 일러준 NIE의 방법들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올 상반기 ‘찾아가는 NIE’에 참여했던 독자들을 다시 찾아가 봤다.

■원선희씨 ‘가족 NIE’=“요즘 매주 토요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서 신문을 펼쳐놓고 대화하고 있어요. NIE 덕분에 막혔던 마음의 문이 열린 느낌이에요.”

원선희(40·경기도 일산)씨의 사연은 3월 21일자 지면에 소개됐었다. “두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에 접어들어 부모와의 대화가 점점 줄어든다”는 게 원씨의 고민이었다.

남편 박성곤(46)씨는 바쁜 직장 일 탓에 딸들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 주말에 모처럼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생기면 ‘공부해라, 책 읽어라, 옷 단정하게 입고 다니라며 잔소리만 늘어놓게 돼 아이들과 대화가 더 단절되는 것 같다’는 사연을 전해왔다.

다시 찾은 원씨의 가정은 분위기가 부드럽게 바뀌어 있었다. 원씨는 “신문이 우리 가족의 대화 물꼬를 터줬다”며 웃었다. 이 가정의 NIE 방식은 신문에서 대화의 소재를 찾고 가족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게 전부다.

지난주에는 ‘올림픽은 스토리다’라는 기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림픽 영웅들의 숨겨진 사연을 다룬 기사를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다 가족끼리 숨기고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놓게 됐다. 큰딸 박은정(일산 대화중 3)양은 “아빠가 저희들에게 반바지를 못 입게 하세요. 친구들은 다 입는데, 저만 긴 바지 입고 다니기 부끄러워서 반바지를 몰래 가방에 넣고 밖에 나가서 입은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박씨는 딸의 고백을 듣고 고심 끝에 반바지 차림을 허락하기로 했다. 그는 “이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웃었다. “아이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무조건 막는다고 부모 말을 듣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면서 설득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바로 NIE의 가장 큰 성과겠죠.”

■서해삼육고 ‘NIE 수업·대회’=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서해삼육고는 올 1학기 개학을 앞두고 ‘찾아가는 NIE’를 통해 30명의 교사가 NIE 연수를 받았다. 황병석 교사가 주축이 돼 “사교육은 커녕 미디어를 접할 기회도 적은 시골 학교 학생들에게 NIE로 다양한 간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자”며 의기투합했다.

황 교사는 “이번 학기에 NIE가 자리를 잡았다”고 평했다. 연수를 통해 NIE에 관심을 갖게 된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 시간에 앞다퉈 신문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지리는 수행평가를 NIE로 바꿨고, 도덕 시간에는 거의 매 시간 토론 자료로 신문 기사를 사용하고 있다.

교사들이 만든 교내 ‘NIE 경시대회’도 3개나 된다. ‘기사 요약 경시대회’ ‘기사 스크랩 대회’ ‘NIE 주제 신문 만들기 대회’ 등이다. 황 교사는 “학생들이 이런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신문 읽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학생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 때도 기사 내용을 화젯거리로 삼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일보의 ‘찾아가는 NIE’가 시골 학교에 NIE라는 변화의 씨앗을 뿌려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김민지양 ‘자기주도 NIE’=‘To Me.’ 지난 5월 ‘찾아가는 NIE’의 도움을 받은 뒤 김민지(경기도 부천여고 1)양의 NIE 노트에 새롭게 추가된 항목이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기사의 내용을 읽고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정리해 보는 코너다.

김양은 초3 때부터 지금껏 매일같이 NIE를 해온 신문 매니어다. 누가 NIE 방법을 가르쳐 준 적도, 시킨 적도 없지만 재미 삼아 신문을 읽고 기사를 모아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혹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NIE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됐다.

‘찾아가는 NIE’로 전문가 진단을 받은 뒤 김양은 “진짜 나에게 도움 되는 NIE 방식을 찾았다”고 말했다. “전문가 선생님이 ‘신문 기사를 읽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NIE의 목표’라고 말씀해주신 게 마음에 와 닿았어요. 단순히 기사를 읽고 지식을 얻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사고력을 넓히기로 했죠.”

왼쪽부터심미향 위원,이정연 위원

기사를 고르는 기준부터 바꿨다. 재미있는 기사보다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기사를 선정했다. ‘우울증’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한 뒤 정신 질환에 편견을 가졌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김양은 “전에는 NIE 노트가 신문 기사 모음집 같았는데, 이제는 나만의 이야기가 적혀 있는 일기장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신문 속 인물과 사건] “할 수 있으니까” 다리 잃은 해병이 미 횡단 나선 이유는 간단했죠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후 두 다리 잃은 아널드 선수가 페달을 손으로 돌리며 릴레이 자전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8인의 퇴역 군인, 일곱 개 다리로 7일간 미국 횡단 4910km의 기적(2012년 6월 26일자 중앙일보 2면)

퀴즈 하나 낼게요. 사람이 8명 있습니다. 이들의 다리는 몇 개일까요? 사람의 다리는 두 개니까, 2×8(사람 수)=16, 총 16개가 돼야겠죠? 답은 땡! 틀렸습니다. 오늘 기사에서 소개할 사람들은 상이용사들이에요. 상이용사는 군에서 복무하다가 부상을 입고 제대한 병사를 의미합니다. 그 가운데는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답니다. 이번에 소개할 8명의 상이용사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들의 다리를 모두 합치니 7개뿐이라고 합니다. 두 다리를 모두 잃거나 혹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이들은 미국 대륙을 7일간 횡단했답니다. 이들이 움직인 거리는 총 4910㎞.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종목으로 불리는 마라톤이 42.195㎞죠. 이들은 성치도 않은 몸으로 마라톤 코스를 10번이나 뛰고도 남는 거리를 완주한 셈이네요.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일에 도전한 이유가 뭘까요. 이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네요. “부상으로 우리 삶의 모습이 변했을 뿐이지 끝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합니다. 사제 폭발물에 다리를 잃은 해병 돈 매클린은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할 수 없게 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고 해요. 이들은 미국 대륙을 횡단함으로써 장애 때문에 몸이 불편해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을 여러 사람 앞에서 증명해 보인 셈이네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선생님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 봤어요. 기사에 나오는 상이용사들처럼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도 점검해 봤고요. 많은 경우 내게 닥친 일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이것 때문에 안 돼’ ‘저것 때문에 못 해’라고 변명과 불평을 해왔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어린이·청소년 독자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진로 문제’와 ‘성적’이라고 하더군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난 얼굴이 못 생겨서’ ‘키가 작아서’ ‘공부를 못 하니까’ 안 된다고 지레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나요? 앞으로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떠오를 때면 8명의 상이용사들이 7일 동안 사투를 벌이며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안 되는 이유, 포기할 수 있는 이유가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 바라보고 불편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말이죠.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샌가 결승선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심미향 숭의여대 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