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입장 때 국회의원 기립전통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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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품격은 내면의 고양된 인간성이기에 남이 꾸며줄 수 없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제 대통령 개원연설 때 보인 19대 국회의 품격은 평가해 주기 어렵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4년 만에 국회를 방문했는데 주인들은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대통령이 회의장에 입장했을 때 강창희 국회의장은 쳐다만 봤고, 새누리당 의원은 일어섰으며, 대부분 민주당 의원들은 박지원 원내대표를 포함해 일어나지 않았다. 사전 여야 합의나 강 의장의 주문으로 기립(起立)해 환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열적이고 무례한 19대 국회의 품격이 한 초선의원의 내면을 쳤던 모양이다. 민주당 황주홍(60·전남 강진) 의원이 개인 블로그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할 때 기립박수까지는 몰라도 기립해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여당은 기립해서 박수 치고 있는데 야당만 앉아 있는 것이 조금 어정쩡해 보일 수 있지 않겠느냐. 대부분의 시민도 그 선일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성숙한 인격은 상대방이 밉더라도 기본 예의를 갖춘다. 그게 긴장된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방한테 대접받고 문제를 풀어 가는 품격 있는 삶의 방식이다. 하물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라면 품격과 관용, 통합의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은가.

 대통령의 국회 입장 때 국회의원들이 기립하는 관례가 아예 없진 않았다. 여소야대 등으로 정쟁이 극심했던 13, 14대 때 노태우 대통령은 여야 의원들의 기립환영을 받았다. 당시 국회가 노태우 대통령의 인격이나 정치를 찬성해서 기립한 건 아닐 것이다. 6·10 민주화 항쟁으로 소중하게 얻은 민주 국회의 고귀함과 자부심이 그런 품격 있는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반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16대 국회를 방문했을 때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유아적 태도로 기립환영이나 한 차례의 박수도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예우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그를 선택한 국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대통령에게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오히려 국회가 예의 바른 대접을 함으로써 스스로 품격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통령 입장 때 국회의원이 기립하는 전통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