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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력 낙제점 vs 일처리 낙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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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1 지난 4월 20일 사이토 쓰요시 일본 관방부장관이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친서를 들고 청와대를 찾았다. 일 정부의 제안은 세 가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다 총리가 정식 사죄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 사과하고 ▶국가예산으로 경제적 인도지원을 집행한다는 것이었다. 눈길을 끈 건 ‘국가예산’이란 대목. 정대협(정신자문제대책협의회)이 요구해 온 ‘일본의 국가책임 인정’과 근접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찬반 논쟁 끝에 한국 정부가 내린 결론은 ‘노’. 배상이란 표현이 빠져 있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이 정도 카드로는 정대협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생각이었고, 실제 그랬다. 물론 양국 정부는 이런 협상이 오간 것을 공식적으론 부인한다.

 #2 협상카드가 무산되면서 공방의 초점은 ‘국가책임’을 둘러싼 해석으로 쏠렸다. 한국 측은 “1993년 8월의 ‘고노담화’에서 국가책임을 시인하지 않았느냐”고 강조했다. 당시 관방장관인 고노가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여했다”고 밝힌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일 정부는 완강했다.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시인했을 뿐 국가책임을 인정한 게 아니다”는 논리다. 접점 없는 평행선. 꽉 막힌 정부 간 대화를 풀기 위해 일본이 마지막 희망을 건 게 다름 아닌 이희호 여사였다.

 #3 지난 5월 초 일본의 골든위크 연휴기간. 일 외교당국자가 비밀리에 방한해 이희호 여사를 찾았다. 당국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정대협과 타협 가능합니까.” 일본은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렸던 이 여사의 시민단체에 대한 영향력을 믿었다. 그를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의 단초를 얻고자 했다. 98년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 일본이 위안부 희생자에 대한 배상 수단으로 추진했던 ‘아시아여성기금’을 막판에 틀어버린 것도 이 여사였다는 게 일본 측 판단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 여사의 역할과 인식에 지나친 기대를 했다”(일본 외교소식통)고 아쉬워한다.

 일련의 흐름은 양국 핵심 현안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12월 교토 정상회담 당시 노다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심성의껏 노력해 보자”고 진심어린 한마디만 했다면 이번 협상카드는 수용됐을지 모른다.

 결국 꽉 막힌 위안부 협상을 우회해 상호 신뢰를 되찾기 위한 돌파구로 삼으려 했던 게 군사협정 체결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에는 코미디 같은 한·일 정보보호협정 해프닝이 터졌다. 서명 1시간 전의 협정 취소. 국가 체면도 대일 협상력도 고꾸라졌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더욱 난망해졌다. 외교력 낙제점인 노다, 일 처리 방식 낙제점인 이명박 정권 때문에 국민들만 힘들고 화나고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