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스스로 출연료 깎겠다는 이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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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1일 방송 예정인 드라마스페셜 시즌3 네 번째 작품 ‘내가 우스워보여’의 촬영 현장. 배우 이천희(왼쪽)가 능력 없는 ‘꼴통’ 검사 한동규 역을 맡아 고등학교 동창생 이창호(박상욱·오른쪽)가 연루된 은행강도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극본은 지금까지 단막극 두 편을 쓴 안홍란 신인 작가가 썼고, 여주인공 역시 신인 배우인 최유화가 캐스팅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08년 3월, 방송가에 단막드라마가 사라졌다. 한류 붐을 타고 드라마의 외형은 커졌지만 상업성과 거리가 먼 단막극은 설 자리를 잃었다. SBS· MBC에 이어 KBS까지 단막극을 포기하자 ‘신인 연출가·작가·배우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리고 2010년 6월, KBS는 단막극을 부활시켰다. ‘드라마스페셜’이란 이름의 단막극과 2·4·8부작 ‘연작시리즈’를 내놓으며 벌써 2년을 채웠다. 이들은 시청률 사각지대에서 적은 제작비로 실험적인 드라마를 내놓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드라마 범람시대, 드라마스페셜 2주년을 맞아 유일한 단막극 촬영현장을 찾았다.

28일, 경기도 수원의 KBS 드라마세트장. 다음 달 1일 방송될 드라마스페셜 ‘내가 우스워보여(일요일 밤 11시 45분)’ 촬영이 한창이다. 방송 직전까지 촬영하기 일수인 미니시리즈가 ‘전쟁터’같다면 이 곳은 영화 촬영 현장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황인혁 감독(오른쪽)과 스태프들이 모니터로 촬영 장면을 보고 있다.

 ‘성균관스캔들’의 황인혁 감독이 오랜만에 단막극을 맡았다. 그는 “KBS 인턴작가들의 대본집을 읽던 중 이 작품을 발견했다. 투자자·광고주의 입김이 적은 단막극은 대본·캐스팅 등 연출자의 의도를 살릴 수 있어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이 날 촬영은 검사 한동규(이천희)가 은행강도가 된 동창생 이창호(박상우)를 조사하는 장면이다. 대본이 좋아 출연을 결정한 이천희는 “7년 전 단막극으로 드라마 데뷔를 했다. 출연료를 덜 받아도 신인 작가와 신인 배우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개념드라마’라 애정이 있다”고 했다.

 드라마스페셜의 편당 제작비는 8000만원. 요즘 톱스타의 편당 출연료가 5000만~6000만원에 이르고, 미니시리즈 편당 제작비가 2억원이 넘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이 때문에 단막극 배우들은 출연료를 깎는 희생을 한다. 지난 3월 손현주는 “단막극을 살려야 한다”며 출연료의 3분의 2를 깎았다. 스태프들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세트를 지을 돈이 없어 섭외가능 장소를 찾기 위해 지방을 돌기도 한다.

 황의경CP는 “PD들에게 ‘엑스트라 조금만 써라’ ‘촬영일수 7일을 넘지 말라’ ‘상상력으로 승부하라’고 이야기 한다”며 “한국전파통신진흥원에서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늦은 편성 시간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황인혁 감독은 “시청자들이 졸고 있을 때쯤 결말이 나온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고 했다.

 ◆2년의 성과=드라마스페셜은 지난 2년 간 많은 신인 연출가와 작가, 배우를 발굴했다. 이달 초 시작한 ‘시즌 3’에서는 3명의 PD가 데뷔작을 준비 중이다. 황의경 CP는 “MBC·SBS의 경우 주로 메인PD의 서브 역할인 B팀 감독으로 데뷔를 하는 실정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단막극이 있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실험적 시도, 시대적 고민 등 드라마의 다양성에도 기여했다는 평이다. ‘시즌3’에서도 88만원 세대의 비루한 연애를 그린 ‘습지생태보고서’, 노숙인의 실족사를 다룬 추리극 ‘노숙자씨의 행방’ 등이 방송됐다. 황CP는“TV 영화라는 새 장르도 모색 중이다. 독창성을 추구하되 대중성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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