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전기요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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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요금 인상안을 논의하기 위해 28일 열기로 했던 이사회를 다음 달로 연기했다. 애초 21일 예정됐던 것을 두 차례 연기한 셈이다. “정부와의 조율이 난항을 겪고 있어서”란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정부와 한전은 요즘 유례없는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 4월 한전 이사회는 13.1%의 인상안을 지식경제부에 전달했다. 전기요금이 원가 수준을 회복하려면 그 정도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경부는 이달 8일 한전의 인상안을 돌려보냈다. 인상률이 너무 높으니 좀 낮춰달라는 의미였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정부는 한전이 제출한 인상안에 대해 인가권만 있을 뿐 이를 수정할 권한은 없다.

 이런 일 자체가 예외적인 풍경이다. 예전에는 이런 절차가 필요없었다. 지경부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해 전기요금 인상률을 결정하고, 한전 이사회는 정부의 인상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전이 갑작스레 준법 모드로 돌아서게 된 데는 속사정이 있다. 소송 때문이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지난해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을 상대로 전기료 인상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아 회사가 본 2조800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걸었다. 이어 올 초에는 정부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다. 한전과 정부는 소액주주들의 소송에 서로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부·한전 모두 소송이 무서워 준법 절차를 지킬 수밖에 없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형식은 정상화된 셈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정부와 한전 간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반려’의 속뜻은 알아서 인상률을 낮춰오라는 통보나 다름 없다. 물가 걱정이 앞선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상률은 최대 5% 정도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전 이사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소송의 공포를 이겨내고 ‘정부의 뜻’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한 비상임 이사는 “인상률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두 자릿수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태로 이사회를 열면 한전과 정부가 정면 대립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소액주주, 양쪽 눈치를 다 봐야 하는 한전 경영진이 이사회를 계속 미루고 있는 속내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 폭은 청와대까지 가세한 ‘물밑 조율’을 통해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된 인상안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전기요금 인상, 언제까지 ‘폭탄 돌리기’로 나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