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탐험 (26) - 빅토리 자이언츠

중앙일보

입력

1911년의 어느날,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세인트루이스의 플랜터스 호텔에 머물고 있던 뉴욕 자이언츠의 존 맥그로우 감독은 다소 황당한 방문을 받았다.

자신을 찰스 빅터 포스트라고 소개한 이 방문자는 서른살의 캔자스 농부였다.

소개는 계속 이어졌다. 자신은 최고의 투수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합류한다면 자이언츠는 불패의 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무려 5달러의 복채가 들어간 점괘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맥그로우는 속는 셈 치고 그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다음날 포스트는 자이언츠의 연습장에 초대됐고, 맥그로우는 직접 미트를 끼고 홈플레이트의 뒤에 앉았다. 하지만 미트 속으로 날아온 공은 100km가 넘을까 말까한 초슬로우 볼이었다.

맥그로우는 소용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이번엔 그를 타석에 들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엉성한 폼의 포스트는 유격수 앞으로 힘없이 굴러가는 땅볼을 쳤다. 유격수의 송구가 뒤로 빠지자, 포스트는 정신없이 내달려 홈까지 밟았다. 불필요한 네차례의 슬라이딩과 함께.

얼마 후 포스트는 자신의 목표대로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었다. 선수가 아닌 응원단장으로서 말이다. 그가 합류하자, 자이언츠는 실제로 불패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그 해 '숙적' 시카고 컵스를 꺾으며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자이언츠 팬 사이에서 포스트의 명성은 대단했다. 행운의 마스코트였던 그는 미들네임인 빅터(Victor)에서 따 온 '빅토리(Victory) 포스트', 또는 '캔자스의 징크스 킬러'로 불렸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12년 시즌 중반, 포스트는 유니폼 반납을 요구받았고, 다시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자이언츠의 시즌이 꼬이기 시작했다. 19연승을 달리고 있던 루브 마커드는 내리 3연패를 당했으며, 자이언츠는 역대 최고의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월드시리즈의 타이틀을 가져오지 못했다.

1914년 2월, 초체한 모습의 포스트는 다시 자이언츠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문전박대를 당했고, 자이언츠는 그 해 2위로 미끌어지며 3년간의 독재를 끝냈다. 그리고 포스트가 세상을 떠난 1915년, 자이언츠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물론 당시의 자이언츠는 크리스티 매슈슨이 이끄는 막강 투수진에 안정적인 타선이 조화된 최강팀이었고, 포스트 없이도 충분히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점장이는 자이언츠가 최강팀이라는 한가지는 맞추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