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나사 빠진 수원중부서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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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유길용
사회 1부 기자

얼마 전 만난 경기지방경찰청의 한 간부는 “잔인한 4월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일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우위안춘(42·오원춘) 사건이 언급됐을 때였다. 목소리에는 반성의 빛이 뚜렷했다. 그는 “해당 사건 이후 우리 경찰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경찰 시스템이 크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112센터와 상황실의 빠른 소통을 막았던 칸막이가 사라졌다. 신고 접수와 함께 출동 지령이 가능해졌다. 경찰은 이런 노력을 ‘쇄신’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석 달도 지나지 않아 4월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사건이 또 터졌다. 그것도 우위안춘 사건 관할 경찰서였던 수원중부서였다. 지난 17일 새벽이었다. 0시34분에 경기경찰청 112센터에 “아침부터 남편(동거남)에게 맞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수원중부서에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신고자의 집은 수원시 지동으로 우위안춘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700여m 떨어져 있었다. 관할 파출소 순찰차가 다른 사건 때문에 모두 출동한 상태여서 출동 명령은 인근 파출소로 내려졌다. 신고자의 집 주소는 112센터에서 이미 확인했다. 집에 찾아가서 신고자를 만나 상황을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는 절차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순찰차를 타고 출동하던 경찰관이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거남이 전화를 받아서는 “신고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별 의심 없이 차를 돌렸다. 동거남 말만 믿고 상부에는 오인 신고였다는 보고까지 했다.

 그 사이 여자는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동거남에게 보복 폭행까지 당했다. 4일 동안 집안에 감금됐다. 사실을 알게 된 피해 여성의 어머니가 강하게 항의한 뒤에야 경찰은 동거남을 불구속 입건했다. 해당 경찰서에 대한 감찰조사도 착수했다.

 이 사건은 얼핏 경찰관 한 명의 실수나 잘못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찰 시스템의 허점이 고스란히 보인다. 해당 경찰관이 “오인 신고였다”고 보고했을 때, 상관이나 담당자는 신고자 본인과 통화했는지를 반드시 확인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현장 확인을 하라”고 지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확인이나 명령이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경찰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조직이나 설비만 잘 갖춘다고 시스템이 원활해지지 않는다. 상황을 맞는 경찰관, 그리고 지휘라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다 긴장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억울하고 안타까운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다.

유길용 사회 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