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달러 ‘마의 벽’ 뚫은 섬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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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호 33면

1945년 이전 일본의 식민지였던 섬나라. 이후 공산세력과 맞서며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 자원이 부족해 수출 주도형 성장전략을 택한 나라. 싱가포르·홍콩 등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나라. 산업화 이후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

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퀴즈라면 정답은 ‘대만’이다. 하지만 ‘한국’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섬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라고는 하지만 북쪽이 철조망으로 꽉 막힌 금단의 땅 아닌가. 섬보다 더 고립된 나라다.

얼마 전 세계은행의 한 보고서는 한국·대만을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에서 벗어난 나라로 나란히 분류했다. 저임금 노동력을 발판으로 성장하다가 뒷심이 달려 정체할 수 있는 단계를 비로소 뛰어넘었다는 의미다. 아직 불안하긴 하지만 양국은 국민소득 1만 달러대. 이른바 ‘마의 벽’을 깼다. 한국의 경우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은 2007년 2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주저앉았다 2010년 다시 2만 달러대로 복귀했다. 모 그룹 회장이 2003년에 제시해 반향을 불러일으킨 ‘10년 내 2만 달러 돌파’ 목표가 달성됐다고나 할까. 대만도 한국보다 늦긴 했으나 지난해 2만 달러대에 진입했다.

서로 닮았지만 대만이 한국보다 더 나은 게 적지 않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고 중소기업의 저변이 넓다. 국제화에서 앞서가고, 외환시장은 안정돼 있다. 97년 외환위기 때만 해도 대만은 한국을 내려다본다는 느낌을 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대만을 경쟁 상대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 국민소득에서 앞서기 시작한 2004년 무렵이 인식 변화의 출발점이었던 듯하다. 그렇더라도 달리면서 힐긋힐긋 돌아보는 육상선수처럼 대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마침 대만은 지난 1월 총통선거 이후 한국을 따라잡겠다고 기를 쓰고 있다. 집권 국민당 홈페이지에 두 나라를 비교한 글들이 자주 오르는 까닭이다.

두 나라 격차의 원인은 많을 것이다. 대만인들은 대기업 위주의 한국 경제와 중소기업 중심의 대만 경제의 차이, 한국의 절반이 안 되는 인구 등을 자주 거론했다. 최근에는 정부와 지도자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외환위기 이후의 과감한 구조조정,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개방화, 정보기술(IT) 산업의 전략적 육성 등 한국 정부의 정책적 선택들이 경쟁력을 키웠다고 분석한다. 결국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갈린다는 이야기다.

중국 등을 상대로 FTA와 유사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해 온 것은 이런 반성 위에서 나온 대응책이다. FTA 파상공세를 펴는 한국을 방어하자는 차원이다. 미국·유럽연합(EU) 등 거대 시장에서 한국과 붙으려면 꼭 필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국교가 끊긴 다른 나라들과 ECFA를 체결하려면 중국의 묵인이 필요했다. 중국과 가장 먼저 ECFA를 체결한 이유다. 한국에는 이게 아픈 일격이다. 이것도 한·중 FTA 협상의 동력이다. 한·중·일보다 먼저 한·중·대만의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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