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도 떴다, 공포 연극

중앙일보

입력

올 여름 대학로를 점령할 ‘우먼인블랙’ ‘오래된 아이’ ‘두여자’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학로에 음산한 기운이 감지됐다. 이 말은 곧 대학로에도 여름이 찾아왔다는 증거다. 하지만 공포 장르가 갖는 특수성 때문일까. 공포 연극을 예매하는 인터넷 예매페이지에는 시니컬함만이 가득하다. 그 흔한 시놉시스도 올려놓지 않은 것은 기본, 심지어 귀신 사진 단 두 장만으로 예매페이지를 채운 경우도 있다. 베일에 꽁꽁 싸인 그들, 연극 ‘우먼인블랙’ ‘오래된 아이’ ‘두여자’의 비밀을 파헤쳐 봤다.

세 연극의 기획사는 입을 모아 외쳤다. “스릴러든 호러든 공포물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맨 앞자리를 사수하라”. 그 이유는‘몰입’이다. 조명으로 음산한 기운을 만들고 음악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들, 앞에 앉은 관객의 뒤통수가 무대에 반쯤 걸쳐있으면 그 몰입도가 덜 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 장르는 깜짝 놀랄만한 장치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때문에 그 요소가 무대 바닥에서 등장하는 경우, 앞 좌석 관객들이 놀라는 모습에 뒷 좌석 관객들은 따라 놀랄 수 밖에 없다. 이에 예매할 때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공포연극의 예매법칙까지 생겨났을 정도란다.

 또 하나, 공포 연극에는 매니어 관객이 적다. 이들 무대를 주로 찾는 건 부부, 연인과 같은 커플 관객들이다. 세 연극의 관객 후기를 잠깐만 훑어봐도 “이 연극을 보고 짝사랑 하던 사람이랑 잘됐어요”라는 글이 쏟아진다. 대개의 극단들도 이를 배려해 ‘커플 할인’ 제도를 만들어 놓았으니 남녀 한 쌍으로 극장에 찾으면 보다 경제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배우들의 내면 연기 돋보인 ‘우먼인블랙’

먼저 ‘우먼인블랙’은 ‘이야기’ 그 외적 요소에 집착하지 않는다. 극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특수효과 대신, 두 주인공의 내면연기에 무게를 실었다. 조명과 음향효과는 배우들의 연기에 비하면 덤이다.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으로 수 년간 악몽에 시달리는 한 남자와, 그의 곁에서 “믿으세요. 믿으면 보이고, 보이면 느낄 수 있습니다”라며 유령의 존재를 느끼라는 또 다른 남자. 극이 진행될수록 또 다른 무언가가 곁에 항상 존재해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관객은 이에 심리적 중압감을 받으며 공포의 깊이에 한층 더 빠져들게 된다. 이 연극을 볼 때 알아두면 좋은 정보가 있다. 맨 앞자리못지 않게 극한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극장 안 숨은 명당들이다. 먼저 극장 1층 A열 11~14번 좌석과 B열 11~14번 좌석이다. 일명 ‘슝슝슝’ 장면이라 불리는 공연 하이라이트를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자리다. 극장1층 D열 6~8번과 E열 6~8번, 2층 A열 7~9번 좌석은 천장에 걸려있는 샹들리에의 진가를 확인하는데 제격인 자리라니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녁 10시에 공연 시작하는 ‘오래된 아이’

연극 ‘오래된 아이’의 극단 마루컴퍼니 이주용 대표는 마루컴퍼니를 한국 공포 연극단의 시초라 자부했다. 2006년 연극 ‘죽었다, 그녀가’부터 쌓아온 노하우가 ‘오래된 아이’에서 빛을 발한다는 자평이다. 15년 전 사라진 여자 아이 인우가 15년이 지난 어느 날 놀랍게도 청년이 되어 돌아왔고, 그의 실종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의 비밀이 속속 파헤쳐진다는 내용이다. 이 연극에서 주목할 점은 공연시작 시간이다. 이 연극은 금요일 저녁 10시, 토요일 저녁 9시30분 공연이 있다. 이는 극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에 관객을 맞이하려는 기획사의 오랜 방침이란다. 이 대표는 “실제로 저녁 8시보다 10시, 9시30분 공연에 더 많은 관객들이 찾아준다”고 말했다.

원초적인 공포 무대 곳곳에 숨긴 ‘두여자’

마지막으로 원초적인 공포물을 찾는 관객들에겐 ‘두여자’를 권한다. 극에는 귀신이 등장하고, 그 귀신이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스킨십을 한다. 무대와 객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귀신 때문에 앞자리 못지않게 통로 측 좌석도 명당으로 꼽힌다. 엄마 주명희와 엄마의 숨겨진 동생 주명선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비밀과 방화사건, 살인 등 공포물에 등장하는 기본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돼있다. 소싯적 영화 ‘링’을 보고 혼자 화장실을 가는데 주저했거나 밤잠을 설쳤던 사람들이라면 조심하시길. ‘임산부와 노약자는 관람을 삼가라’는 이 극의경고 문구처럼, 때론 이렇게 원초적이면서도 정석적인 공포가 더 무서운 법이다. 암전된 극장, 당신의 발목을 노리는 하얀 손은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글=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파파프로덕션," 마루컴퍼니, 공연예술집단, 노는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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