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고, 꿈꾸던 일 오늘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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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나는 양평에서 산다. 몇 년 전 작은 집 하나 지어 주말에만 들락거리다가 지난겨울 폭설로 길이 막힌 후부터는 아예 눌러앉았다. 아침이면 창문 밖을 날아다니는 온갖 잡새들의 시끄러운 수다로 잠이 깨고 밤이면 개구리 울음을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오디 따 먹고 글 하나 쓰고, 산나물 삶아 채반에 널어놓고 책 한 권 읽으며 뒹굴뒹굴 그렇게 산다.

 시골 삶이 궁금한지 많은 사람이 자주 놀러 온다. 올 때마다 구워 바친 돼지고기를 모으면 돼지 한 마리는 족히 될 것이고, 씻어서 상위에 올린 상추나 깻잎이 한 밭떼기는 되리라. 어떤 사람은 ‘외롭고 심심하겠다’ 동정도 하고, 어떤 이는 ‘사는 것같이 살아 좋겠다’ 부러워도 한다. 그중 유독 내 시골 삶을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무슨 전시회에서 만났을 때에도 ‘막내딸이 대학만 가면 그림 시작해야지’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에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못했고, 그 어떤 일도 시작하지 않았다. 언제나 늘 부러워만 한다. 버릇인가 보다. 이번에도 대학 졸업한 딸이 시집만 가면 시골로 이사를 오겠다나 뭐라나. 주상복합 빌딩에서 사는 그녀의 집 화장실만 잘라서 팔아도 우리 집, 텃밭, 꽃밭까지 다 해결될 터이니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미루는 건 아닐 것 같은데 매번 풀어야 할 조건이 많은가 보다. 몇 년 지나봐라. ‘손녀가 학교에 들어가면 꼭 할 거야’로 바뀔 거다. 그녀가 하고 싶은 건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모양이니 말이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익살스럽게 번역한 탓에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묘비명이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많은 희곡을 남기고 1925년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아일랜드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 어느 누가 봐도 그다지 우물쭈물했던 인생을 살았을 것 같지 않은 그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이런 미련이 남았다니 우리네 인생이야 안 봐도 비디오다.

 꿈꿔 왔던 일이나 하고 싶었던 것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지금’ 하기 힘든 이유는 꼭 있다. 그게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딸이 대학 가면, 결혼하면, 손녀만 다 크면’ 이런 이유. 세월 따라 그저 종류만 바뀌는 것 아닌가. 하고 싶은 일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것이라면 실행하긴 더욱더 힘들 거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자.

 그런 관대함을 자주자주 내게 베풀어 나를 행복하게 하자. 우물쭈물하다가 자기 무덤 앞에서 땅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말이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그동안 ‘삶의향기’를 집필해온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가 객원칼럼니스트로 위촉돼 분수대 필자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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