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 화장발 좀 심하지 않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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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31면

소개팅을 앞둔 사람에게 흔히 “화장발·조명발에 속지 마라”는 조언을 한다. 햇볕 아래 민낯을 보고, 화장 지운 얼굴을 보고 실망할 수 있으니 안 보이는 모습까지 잘 살피란 것이다. 화장은 외모의 결점을 감추고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피부 결점을 보완한다는 ‘컨실러(concealer·감춰주는 것)’란 이름의 화장품까지 있다.
사람만 화장하고 꾸미는 게 아니다. 기업도 하고 상품도 한다. 분식회계(粉飾會計)가 대표적이다. 회계장부에 분칠을 해 실제보다 예쁘게 꾸미는 것이다.
멋지게 보이고 싶은 거야 사람이나 상품이나 마찬가지니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화장이 지나치면 ‘변장’이란 소리를 듣는 것처럼 상품의 ‘화장’이 구매자나 투자자의 판단을 흐릴 정도가 되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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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제가 되는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도 일종의 ‘화장술’이다. 불완전 판매란 고객에게 수수료나 정확한 수익률·위험요인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않고 좋은 점만 부각시켜 파는 것이다. 최근의 변액연금보험 수익률 논란이 대표적이다. 계약자가 내는 돈에서 10%가량을 사업비로 뗀다는 걸 제대로 알리지 않고, 수익률도 사업비를 뗀 금액을 기준하다가 된통 비난받았다. 최근 인기를 끄는 즉시연금도 수수료가 상당하다는 걸 아는 고객은 많지 않다. 주가연계증권(ELS)도 위험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어느 대형 시중은행이 내놓은 저축상품의 광고문에는 연 최고 12%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크게 써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기본금리는 연 3.2%다. 여기에 신용카드 사용, 급여이체, 스마트폰 가입 우대 등 각종 거래를 모두 집중시켜야 12%쯤 된다. 카드사용액에 따라 추가금리도 달라 월 25만원 미만은 0.2%에 불과하다. 12%를 실제로 받기는 대단히 힘들다.

한국소비자원이 이달 초 개최한 ‘금융상품 정보제공과 소비자보호’ 세미나에서도 금융회사의 불완전 상품 판매 관행을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불완전 판매가 늘어나는 요인은 다양하다. TV홈쇼핑이나 인터넷처럼 판매원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금융상품을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면(對面)구매라도 판매원이 물건 팔 욕심에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판매자가 상품 특징 자체를 모를 때도 있다.

일반 상품도 실제보다 좋게 꾸며 파는 경우가 있지만 금융 상품의 ‘화장’이 더 문제가 되는 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약관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용어가 부지기수다. 결합이네, 파생이네 복잡한 상품은 더 늘고 있다. 손님이 왕이라지만 금융 상품을 살 때는 잘 몰라 약자가 되기 일쑤다. 금융지식이 부족하면 판매자를 믿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금융회사의 책임이 더 크고, 다른 어느 상품보다 분명히 설명해줘야 한다. 화장 지운 민낯을 보여달라는 얘기다. ‘화장’은 상대에 대한 예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면 결국은 서로 손해다. 변액연금보험 판매가 줄고, 보험사들이 실수익률을 공개하기로 한 것처럼. 금융상품처럼 복잡한 것은 개인 힘만으로 ‘화장’을 지우기 힘들다. 고객들의 꼼꼼함 못지않게 정부가 힘을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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