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미학 시대의 기록 내면의 탐색-20세기로 떠나는 사진 여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5호 09면

Sifnos, Grece, 1961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고, 찰나에 승부를 거는 것은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1908~2004)은 20세기를 온전히 살다 간 작가다. 흔히 그의 사진을 두고 근대의 완성이며 현대의 시작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가장 사진다운 면모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진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사진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답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여주기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전 5월 19일 ~ 9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이용하는 기술로 시작됐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새로운 예술적 성취를 가능케 했다. 1930년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소형 카메라와 필름은 거리에서도 빠르고 쉽게 사진 찍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브레송의 라이카(Leica) 사랑은 각별했는데, 카메라를 자신의 ‘눈의 연장(延長)’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카메라와 인간의 눈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눈이 보고 느끼는 것처럼 카메라를 조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그만큼 사진에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2 Bruxelles, 1932

휴대용 카메라의 장점은 그의 사진에서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으로 셔터를 눌러 반응할 수 있게 됨으로써 카메라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미처 보지 못할 한순간을 포착해내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우리 눈은 평소에 익숙한 것들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길을 걷거나 운전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빛을 전부 의미 있는 정보로 처리하려 한다면 아마 금세 지쳐버릴 것이다. 브레송의 위대함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카메라를 통해 찾아냈다는 데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 속에 숨어 있는 결정적 단서들을 엮어 특별한 순간을 발견한 것이다.

3 Dessau, Allemagne, 1945

따라서 그의 사진에서 ‘결정적 순간’은 ‘결정적 사건’과 구분된다. 놀라운 사건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 하지만 브레송이 제안하는 ‘보는 방법’은 달랐다. 흘러가는 시간과 넓게 펼쳐진 공간 속에서 하필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던 일상의 특별함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이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을 다루지 않았어도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는 독특한 시각 때문이다. 우리 인생이 그래야만 하듯.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