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매카시즘이라는 양날의 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매카시즘(McCarthyism·극단적 반공주의) 문제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지난 10일 당선 수락연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의 매카시즘과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의 종북(從北)론을 매카시즘이라고 강하게 반박하는 선명성을 과시한 덕분에 경선에서 승리했다고 판단했다. 대선 과정에서도 득표를 위해 매카시즘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까지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11일 “박근혜·정몽준·김문수 등 새누리당 대권주자들이 방북 당시 했던 친북 언행을 공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남한의 보수 정치가들을 ‘친북’이라 주장하는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공산국가인 북한이 매카시즘을 구사하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매카시즘이 대중 정서에 먹혀드는 현실이 문제다. 매우 감성적이고 선동적인 매카시즘은 쉽게 광풍(狂風)으로 몰아치다 순식간에 역풍(逆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 바람에 휘둘리면 안 된다. 그러자면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매카시즘은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McCarthy)의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1950년 매카시의 등장으로 매카시즘이 불어닥쳤고 54년 그의 몰락으로 바람이 그쳤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도가 아니다.

 매카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사회 전체를 우경화시킨 시대적 흐름이었다. 매카시 의원은 그 흐름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오용(誤用)한 인물이기에 오명(汚名)을 역사에 남겼을 뿐이다.

 매카시즘의 진짜 원인은 적색 공포(Red Scare)다. ‘1차 적색 공포’는 1919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비롯됐다. 그런데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소련과 동맹국이 되면서 잠시 공포를 잊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스탈리니즘에 대한 ‘2차 적색 공포’가 시작됐다. 미국을 강타한 3대 적색 충격은 소련의 핵실험 성공(1949년 8월 29일)과 중국 공산화(1949년 10월 1일) 그리고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이었다.

 먼저 터진 소련의 핵실험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 직후 스탈린의 동유럽 점령을 보면서도 “핵무기는 우리만 가지고 있으니까”라는 안도감에 여유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소련이 핵무기를 만든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공포에 휩싸였다. 누군가 핵개발 정보를 소련에 넘겼다는 확신에서 간첩사냥에 나섰다. 로젠버그 부부가 핵 관련 자료를 소련에 넘겨준 혐의로 붙잡혔다. 로젠버그는 공산당원이었다.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형당했다.

 적색 공포는 일종의 보수 본능이다. 매카시즘이 미국을 휩쓴 것은 그만큼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그 여운도 길었다. 당시 매카시즘의 영웅은 정치판의 닉슨과 영화판의 레이건이었다. 70년대 닉슨, 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대를 거쳐 미국은 마침내 ‘악의 제국’에 승리했다. 탈(脫)이념의 시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적색 공포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북한은 핵으로 무장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으로 적색 공포는 현실화됐다. 매카시즘 유령이 활개 치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카시즘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카시즘의 문제는 불법 사상검증이었다는 점이다. 행동이 아니라 생각을 처벌했다. 증거가 아니라 추정과 짐작으로 죄상을 따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방대한 민간인 불법사찰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 이런 매카시즘은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이석기·김재연 의원 문제도 적법한 틀 안에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심판해야 맞다. 부정 경선을 저지르고, 이를 징계하는 중앙위원회를 폭력으로 무산시킨 이들의 반(反)민주적 행동을 따져 물어야 한다.

 매카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안보 의식을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매카시즘에 대한 비난이 결국 건전한 안보 의식과 대공 경계심마저 죄악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국사범 경력이 있는 국회의원을 모두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주장이나 정대세를 인터뷰한 방송을 종북이라 주장하는 것 등은 경계해야 할 매카시즘이다. 이런 주장이 오히려 매카시즘이란 비난을 초래함으로써 건전한 안보 의식을 위축시킬 수 있다.

 매카시즘은 양날의 칼이다. 보수는 색깔론의 유혹을 자제해야 한다. 진보는 건전한 안보 의식마저 매카시즘이라 매도해선 안 된다. 매카시즘의 칼날이 어디를 향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