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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아키노,중국에 공동 견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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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란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필리핀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를 방문해 회담을 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30년 전 필리핀 군사정부의 핍박을 피해 미국에 망명한 인연이 있다.

이번 미ㆍ필리핀 정상회담은 필리핀이 남중국해의 스카보러 섬(중국명 황옌다오)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두 정상은 ‘차이나(중국)’란 단어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겨냥한 표현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두 정상은 성명에서 영유권 분쟁이 무력의 사용없이 외교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적 가치가 있는 해역이나 항로에서 갈등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남중국해와 태평양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분명한 국제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립적인 발언같지만 한마디로 큰 나라라고 해서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작은 나라를 힘으로 핍박해선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키노 대통령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과 필리핀이 서로 해상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3일 중국의 푸잉(傅瑩) 외교부 부부장은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낸 기고문에서 “황옌다오는 중국의 고유 영토”라며 “소국이 마음대로 대국을 침범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또 남중국해 문제는 당사국끼리 해결해야 한다며 미국의 불개입을 요구해 왔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오바마 대통령이 외교적 해결과 국제 규정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것 자체가 필리핀 편을 들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인 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키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오찬을 겸한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클린턴 장관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 측에 해안감시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미국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 “우리는 해양부문의 정보 교류와 협력 확대를 위해 서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미국은 필리핀의 해안감시센터의 설립과 관련장비 및 운영요원 교육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구체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면서도 “부근 해역의 평화와 안정, 자유로운 항해와 통상, 국제법 존중의 측면에서는 분명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 간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규약안(COC)에 조속히 합의하라고도 촉구했다. 해당 영토가 중국 소유인 만큼 국제 규정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를 은근히 압박한 셈이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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