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련의 트렌드 파일] '난 너와 달라' 심리 파고드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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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와 아이스크림점 레드망고, 그리고 아이포드(iPOD) MP3. 유사 이래 최대 불황이었다는 지난해 히트 상품들이다. 그리고 이들 세 가지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여지를 남겼다'란 말로 축약할 수 있을 듯싶다.

싸이월드는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되 자신만의 색깔을 은연중 드러낼 수 있게끔 했다. 레드망고 가게는 그저 맛좋은 아이스크림을 구입하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토핑을 이것저것 섞어 자기만의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게끔 했다. 레드망고가 단순히 먹는 곳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놀이터라는 느낌을 주게 된 것도 이런 '자유로움' 때문이다. 인터넷 지식 검색에서도 레드망고 토핑을 어떻게 코디하는 게 가장 맛있는지 그 비법을 앞다퉈 소개할 정도다.

심플한 기능과 디자인의 아이포드는 대신 액세서리로 변주를 주었다. 케이스나 야광 등을 이용, 남과 다른 나만의 MP3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 게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는 분석이다.

최근의 소비자들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소외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창조적 욕구가 제품 구매에도 연결되는 것이다. 위 세 제품의 성공 스토리는 이런 젊은 세대의 소비 취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흔히 사용하던 투피스(재킷과 스커트 한 벌)란 용어를 신세대들은 그다지 즐겨쓰지 않는다. 다양한 재킷을 또 다른 다양한 하의랑 코디해 입는 것이 그들의 패션 코드다. 같은 원단의 한 벌을 세트로 입는다는 것은 그들에겐 고리타분하고, 뻔하게 다가온다는 얘기다.

이미 만들 때부터 어떻게 입어야 한다고 규정된 듯한 옷은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이 옷은 어떻게 코디하는 게 좋을까'란 재미를 선사해 주어야 한다.

몇 년 전 미국의 일회용 반창고 시장의 대명사인 벤드에이드 아성에 큐래드가 도전장을 냈다. 그것도 상처 부위가 도드라지게끔 하는 반창고로 말이다.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무시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상처 부위가 가능한 한 드러나지 않게 피부색과 가장 유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랑스럽고, 또한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들어간 반창고는 선풍을 일으켰다.

젊은 소비자일수록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강박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또한 그 개성으로 주목받고 싶어한다.

휴대전화를 살 때도 이미 확정된 모델이 아니라 벨소리와 컬러링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장식이나 액세서리를 계속 바꿀 수 있게 하는 여지를 남긴다면 어떨까. 벤드에이드의 아성을 큐래드가 잠식한 것처럼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휴대전화 브랜드가 탄생할 것이라고 나도 믿는다.

◆ 김해련(43)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MBA와 패션을 전공했다. 현재 패션 정보 트렌드 컨설팅 회사인 아이에프 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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