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주인공 강필석·전미도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9일, ‘번지점프를 하다’의 첫 연습을 마친 뮤지컬 배우 강필석과 전미도를 만났다. 그들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의 개막을 앞두고 “마치 새학기를 앞둔 초등학생이 된 기분”과 같다고 말했다.

1983년 비 오는 여름, “버스정류장까지만 좀 씌워주시겠어요?”라며 인우의 우산 속으로 태희가 뛰어들었다. 그렇게 17년이 지나 2001년의 봄. 인우는 다시 태희를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가 만난 건 현빈이다. 그녀처럼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이 있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사람. 인우는 낯선 남자에게서 태희를 느낀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는 알듯 모를 듯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런 영화가 무대에 올려진다니 또 한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여타 대형 극장의 뮤지컬들이 빨강, 파랑, 검정의 ‘쇼’와 같다면, 이들 무대는 은은한 파스텔톤의 ‘그림’이 아닐까. 배우 강필석과 전미도는 이 말을 듣더니 가방 속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꺼낸다. 그들 손에 들린 건 민트색과 상아색이 어우러진 작은 팜플렛. “우리 무대가 꼭 이런 색 같아요” 인터뷰 내내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그들, 강필석과 전미도 역시 파스텔의 빛을 닮아 있었다.

‘ 닥터지바고’의 라라·파샤가 태희·인우로 재회

 다음달 14일, 뮤지컬 ‘닥터지바고’의 라라와 파샤가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와 인우로 재회한다. ‘닥터지바고’가 막을 내린 지 꼭 한 달만이다. 강필석·전미도 배우는 연달아 두 작품에서 같은 무대에 서는, 인연 깊은 사이다.

 “사실 ‘닥터지바고’에서 필석 오빠랑 만나는 씬은 결혼식 장면 단 한 씬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한 장면에서 파샤랑 뽀뽀하는 횟수가 공연 전체에서 지바고랑 뽀뽀하는 횟수보다도 많고요(웃음), 필석 오빠가 진짜 연인 같이 느껴져요. 그 교감이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어떤 효과를 낼까 기대도 되고요.” (전미도)

 감정표현이 섬세하게 나와야 하는 멜로극의 특성상 두 배우간의 친밀도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인터뷰 내내 티격태격 오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 왠지 모를 믿음이 생긴다. 더욱이 ‘번지점프를 하다’의 인우와 태희는 곱씹을수록 ‘닥터지바고’ 속 인물들과 닮아있단다.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하는 ‘태희’는 세 남자의 마음을 뒤 흔드는 사랑스런 ‘라라’와 비슷하다. 강필석이 해석하는 ‘인우’ 역시 한 여자에 의해 삶이 뒤바뀌어 버리는 ‘지바고’의 모습과, 목적을 향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파샤’의 모습이 뒤섞여 있다.

 그 누구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인우의 순수함은 강필석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실제로 인우라는 아이가 존재하기라도 하듯 한 곳을 또렷이 응시하며 캐릭터를 설명을 하는 그에게서 인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진다. 다시 만난 사랑을 위해 가족이고 직장이고 그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 강필석 본인도 재회한 옛 사랑을 보면 그리할 수 있을까. 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심이에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근데 또 모르죠.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애틋한걸 수도 있고요(웃음).”
 
그때 그 시절 감성 그대로 담은 대사·음악 돋보여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사랑비’와 같이 차오르는 첫사랑의 홍수 속,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만이 갖는 차별점은 무엇일까.

 “옛날에 듣던 음악을 지금 다시 들어보면 그때 생각이 울컥 떠오르잖아요. 근데 저희 뮤지컬 넘버는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모르는 음악이 나를 과거로 데려다 주는 느낌이랄까요.”

 첫 연습에서 이런 느낌을 가졌던 전미도는 대본 리딩을 하는 내내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최유하와 함께 “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을 속삭이곤 했다고 한다. 분명 슬픈 노래가 아님에도 극의 음악은 두 여배우의 감성을 자극했다. 음악의 힘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는 점, 같은 ‘첫사랑’을 얘기한다 해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좀더 돋보일 수 있는 이유다.

 영화가 나온 뒤로 벌써 11년이 흘렀다.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을 담고 있는 대사 자체도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에 제격이다. 3년 전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서는 강필석이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대사가 있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극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인우의 대사다. 만남도 빠르고 헤어짐도 쉬운 요즘 시대에는 좀 처럼 느껴보기 힘든 감정이다.

 올 여름, 영화의 정서를 기대하고 있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매니어와 이 두 배우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을 뮤지컬 팬들에게, 전미도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올 여름엔 비가 많이 온데요. 비 오는 날 딱 보기 좋은 뮤지컬이거든요. 놀러 오세요. 우산 꼭 챙기시고요.” 자신의 작품에 확신이 넘치는 그에게서 ‘번지점프를 하다’의 희망이 보였다.

<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