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죽은 덩샤오핑이 열쇠 쥔 천안문 재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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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4일은 천안문(天安門) 사태 23주년이다. 수많은 학생과 인민이 탱크와 총성에 맞서 민주화를 외친 날이다. 그러나 이날 천안문 광장엔 민주화 운동의 자부심 대신 무장 공안의 매서운 눈매만 가득했다. 광장을 동서로 가로질러 38㎞를 달리는 창안(長安)대로나 시내 쇼핑센터와 공공장소에서도 공안의 눈길을 피할 순 없었다. 20년 넘게 반복되는 6월 초 베이징(北京)의 모습이다.

 G2(미·중)로 굴기(<5D1B>起)하는 중국에서 개혁과 민주 요구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민주적 개혁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밝혔을 정도다. 한데 왜 중국은 ‘천안문 사태’ 앞에만 서면 재평가를 외면하고 작아지는 걸까.

 이면엔 덩샤오핑(鄧小平)이 있다.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그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던 자오쯔양(趙紫陽·2005년 사망) 당시 당 총서기를 실각시키고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도록 했다. 말하자면 천안문 사태에 대한 재평가는 덩에 대한 재평가인 셈이다. 그러나 덩은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개혁·개방의 설계사다. 중국 근대화는 그의 유산이다. 덩을 비판하고 건재할 중국 지도자는 없어 보인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덩이 직접 낙점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걸까. 아니다. 죽은 덩샤오핑의 말에 답이 있다. 그가 가장 존경했다는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원용하면 된다. 개혁·개방 초창기인 1980년 8월, 덩샤오핑이 당 간부들에게 한 얘기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의 일생을 보고 길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마오 주석은 공(功)이 첫째고 과(過)는 둘째다. 그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 마오 전 주석에게 문화대혁명 등의 실책이 있지만 전체로 보면 국가를 위한 공이 훨씬 많다는 ‘공대어과(功大於過)’론이다. 그의 말에서 ‘마오’를 ‘덩’으로, ‘실사구시’를 ‘개혁·개방’으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마침 천안문 사태 희생자 가족들도 신축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천안문 사태에 대한 재평가가 덩을 부정(否定)하지 않으면서 민주적 개혁을 끌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올가을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 선출이 확실시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덕(德)과 포용력, 국제적 감각과 개혁성을 고루 갖춘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국가 원로들의 지지 또한 압도적이다. 그 어떤 지도자보다 천안문 사태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유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G2 반열에 든 중국이 민주와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국격(國格)을 갖출 때가 됐다는 점이다.